[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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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3. 미친 밤의 저주
조운은 주위를 둘러보며 또 물었다.

“이 마을에는 대나무가 없습니까?”

촌로는 별 싱거운 사람 다 본다는 듯 히죽 웃었다.

“아, 대나무 없는 동네가 어디 있나? 예로부터 우리 선조님들만큼 대나무를 많이 가꾼 민족도 없을 텐데…….”

“그렇겠죠? 대나무는 있겠죠? 그런데도 못난 나는…….”

조운의 음성 끝에는 울음기가 배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촌로는,

“못나긴? 근데, 대나무는 왜? 소쿠리 만들려고?”

이번에는 조운이 대나무로 엮은 물건들을 팔러 다니는 장사치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조운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멈출 수 없었다. 어쩌다가 시골 노인네와 이따위 흰소리나 나불거리게 되었는지 한심하였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운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참 가다가 힐끗 뒤돌아보니 장승이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환영이 보였다. 그게 추락하는 광경이 나타나기 전에 조운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팔은 퍼덕거릴 줄 모르는 비차 날개같이 뻣뻣하기만 했고, 다리는 제멋대로 비칠비칠 굴러가는 비차 바퀴같이 그저 허방을 짚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아무 기억이 없었다. 새의 운수를 타고 태어난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몰랐다. 차라리 새로 태어났으면 나았을 것이었다. 상돌 같은 백정이나 광녀처럼 미치광이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조운은 베개를 베고 누워 깜빡거리는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는 둘님을 무연히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남편에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는 아내가 거기 있었다. 무정하다 못해 냉기마저 감도는 분위기였다. 봄날 보리밭의 종달새는 어디로 가버렸나. 떨어져 나간 비차의 날개나 바퀴처럼 자꾸만 멀어지는 듯한 부부의 정.

“하루 종일 일한다고 고단할 텐데 그만 안 자고…….”

그래도 둘님은 듣지 못한 사람처럼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당신 바느질하는 자태가 이리 고운 줄 몰랐는데…….”

부스스 몸을 일으켜 앉는 조운. 둘님은 묵묵부답. 바람벽에 일렁이는 그들 그림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두 개의 검은 비차같이 비쳤다. 부부 비차.

“왜놈들이 곧 우리 고을에도 들어올지 모른다니 정말 큰일이오.”

둘이 가정을 이룬 후부터 조운은 부부의 예를 갖추어 둘님에게 말을 높였다. 왜군 이야기가 나오자 돌사람 같던 둘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게 조운의 눈에 잡혔다.

“나라를 건지실 귀인께서는 오셨는데, 귀인을 구할 비차의 완성은 아직도 까마득하니 미칠 것만 같소. 나 때문에 큰 화를 당할 뻔했던 상돌 아우 보기도 민망하고 말이오.”

비봉산 쪽에서 이 나라 텃새인 수리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 미물도 자기들이 살아온 이곳이 외적의 침입을 받아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비차를 만들지 못하면, 귀인이 위기에 빠졌을 때…….”

조운이 채 말을 끝맺기도 전에 둘님이 바느질감을 윗목으로 밀쳐버리고는 아랫목에 드러눕더니 머리끝까지 이불을 푹 둘러써버렸다. 집 밖으로부터 소름 끼치는 괴상망측한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리고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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