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드라마를 보며
기황후 드라마를 보며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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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반성중학교장)
TV 역사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한정된 틀 속으로 과거의 인물에 대하여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현재로 옮겨오는 것이다. 시청자는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어제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반면에 제작자는 많은 것을 준비한다. 세트장 설치 및 시나리오 구성, 무대장치, 탤런트 섭외 등등. 현실적 과제로 시청률을 끌어 올려야 하며 극중 인물의 묘사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모 방송국의 ‘기황후’를 대하자 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제에 의하여 꽃다운 처녀들이 전장으로 끌려가 이름 없이 쓰러졌거나 치유되지 못하는 상처를 안고 외롭게 살아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게 한마디 사죄도 없이 오히려 망언을 일삼는 일본 정치인들을 보면서, 원나라로 끌려가 고향을 밟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한을 안고 살아야 했던 공녀를 다루는 드라마에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기황후는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차를 따르는 궁녀로부터 재인·귀빈·제2황후·황후가 되고 황태후를 거쳐 주원장에 의해 몽골로 쫓겨 북원(北元)이 되는 시기를 살았다. 공녀제도를 없애고 원의 성으로 편입시키려는 야욕을 물리치고 고려의 명맥을 유지시켰으며 고려 복식과 음식문화를 대륙에 전파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기황후 및 왕유, 순제를 애정의 삼각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극중의 왕유라 불리는 인물은 왕정이며 충혜왕이다. 역사 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해 너무 황당했다. 왕유와 기재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황후가 자기 아들인 양 키운다. 충혜왕과 기황후는 연인 사이가 될 수 있을까. 황후가 기재인을 무고하면서 ‘기양(奇洋)’으로 쓴 부적을 땅에 묻는다. 과연 이름은 기양인가.

다른 자료에 ‘기랑’은 강화도에서 자랐는데 성격이 쾌활하고 활쏘기를 즐겼다. 개경의 음적이 강화도에 잠입했다가 달아난다 하여 추적하다 풍랑을 만나 대청도로 떠밀려가고 유배 와 있던 원나라 황태제(순제)를 만나게 된다. 음적은 충혜왕을 일컫는데 난폭한 임금으로 알려졌지만 원나라의 쌍성, 여진, 심양 등으로 끌려간 고려인들의 송환을 요청하고 5도에 염장도감을 설치해 소금판매를 전담케 하는 등 경제 활성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고려는 77여년을 원의 부마국으로 시호에 ‘충(忠)’ 자를 가진 왕들이며 원나라 조정의 권력 향배에 따라 폐위와 복위를 반복했는데 왕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충혜왕은 모후를 강간했다는 혐의로 원으로 소환돼 귀양길에 죽고 두 아들은 왕이 되고 동생이 공민왕이다. 고려사는 조선 원년에 편찬돼 충혜왕을 황음무도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대적으로 악역을 맡게 되지 않았을까.

기황후는 700여년 전 공녀로 끌려가 황태후까지 되고 30년 이상 원나라를 실제적으로 통치했지만 친정 가족들은 척살당하고, 한 번도 고려 땅을 밟지 못하는 그야말로 불꽃처럼 나비처럼 살다간 여인이었다.

실로 기황후의 생애는 원의 쇠퇴와 명나라 개국, 고려 멸망과 조선의 건국 등 격변기였다. 지나친 편곡은 그 노래가 아니며 지나친 각색은 다른 기황후가 된다. 이번 방영을 계기로 기황후의 한과 기다림의 삶이 재조명되기를 기대해 본다.
안명영 (반성중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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