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장. 3. 미친 밤의 저주
“우우! 아아아…….”

처음에는 고함치다가 울부짖는 그런 소리였다가,

“카아! 으으으…….”

이번에는 공격하다가 신음하는 그런 소린가 했더니,

“이히히히……. 흐흑흑흑…….”

나중에는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엇갈리는 소리였다.

조운은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고, 둘님은 이불로 온몸을 둘둘 말았다. 그건 끝없이 추락하는 비차 소리였다. 지옥의 소리, 유령의 소리, 그리고 신에게서 가장 저주 받은 인간의 소리.

깊어가는 밤, 비봉산 서편 자락 가마못 안동네는 삽시간에 악귀의 춤과 노래로 휩싸여버리는 듯했다. 온 동리 개들이 광견처럼 짖어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급히 일어나 문단속을 하고 등잔불을 꺼버리고 자리에 누워서도, 혹시 자기들 집 안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끌끌 혀를 차면서, 또 때로는 온갖 욕을 하면서, 또 드물게는 눈시울을 붉히거나 염불을 외면서.

그러나 그 동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광녀가 그네들 집에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광녀가 들어갈 집은 단 두 집밖에 없다는 것을. 광녀 자신의 집과 조운의 집. 하지만 아직 한 번도 광녀가 조운의 집 사립문 안으로 들어간 적은 없었다. 광녀는 언제나 조운의 집 흙담장 밖에서만 맴돌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광녀는 조운의 집 낮은 담장 너머로 집 안을 향해 그 괴상망측한 소리들을 질러대고 있는 것이다. 담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수십 수백 번도 더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소리의 공격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담장 가에 붙어 자라는 늙은 감나무뿐이었다. 지난날 탁발승이, 백년이 되면 천 개의 감이 달리고, 하던.

조운은 자신의 가슴을 찧고 싶었다. 아직 어린 시절, 그저 안됐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주었던 연 하나, 그것이 한 여자에게 그토록 강한 집착과 고통 그리고 한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광녀 한 사람에게만 그친 게 아니었다. 또 다른 여자, 아내 둘님도 마찬가지였다. 종달새 같던 그녀를 얼음장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조운의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때 낀 낡은 회색저고리와 검정치마(광녀의 영원한 단벌옷과도 같은)를 걸치고, 조운 자신이 있을 방을 보면서 피웃음과 피울음을 터뜨리는, 발정 난 암캐처럼 날뛰고 있을 광녀의 모습…….

조운은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정신이 나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던 광녀가, 그와 둘님이 혼례를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녀의 유일한 성애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를 다른 여자에게 빼앗겼다는 울분과 슬픔을 이기지 못해, 남들이 잠들려고 하는 밤중에 저렇게 혼자 광기를 부리며 악귀의 춤과 노래로 온 동리 사람들을 불안과 쑥덕거림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도 잘난 것도 없는 이 인간의 무엇이 좋다고 저러는가?’

자괴심과 죄책감 그리고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초조함이 조운을 뱀같이 휘감았다. 그런 가운데 조운은 치를 떨면서 생각했다. 광녀에 대한 나의 정확하고 솔직한 감정결은 대체 무슨 모양이고 어떤 빛깔인가를. 광녀가 있음으로 하여, 둘님의 나에 대한, 나의 둘님에 대한, 이 환장할 삐걱거림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