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의 고독사와 개미
현대사회에서의 고독사와 개미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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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진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
인간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유혈전쟁에 대량학살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은 벌과 개미들뿐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고도로 발달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동물이다. 나는 1987년도부터 2006년까지 독일에서 활동할 때 타국인으로서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을 주제로 작업을 하면서 곤충 혹은 벌레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연구하게 되었고, 여러 조형적인 실험을 통해 ‘개미’라는 작품소재를 발견하고 물질적 고도성장으로 대표되는 인류문화에 대비시켜 보는 작업을 지금까지 지속해 왔다.

왜 개미였던가? 영국의 어느 곤충학자의 계산에 따르면 지구상에 사는 총 곤충의 수는 줄잡아 100경에 이른다. 그중 개미는 전체의 1%만 잡아도 그 수는 무려 1경에 이른다. 일개미 한 마리의 체중을 1~5밀리그램으로 계산해 보면 전 세계에 분포하는 개미의 무게는 인류 집단 전체의 무게와 엇비슷해진다.

만일 인류가 멸종한다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온갖 구조물들이 모든 자취를 감추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생태계의 안녕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개미가 사라진다면 지구 생태계의 존속마저 위협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개미는 인류라는 존재 이전에, 그리고도 오래전에 이미 조직사회를 구성하고, 건축물을 세우고 사육을 시작했고 주거지 이동과 약탈, 조직적 전쟁 등 인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는 미약하나 조직이라는 구성을 통해 거대한 생존력을 발휘하는 창발적 존재라는 점에서 내가 알고 있는 어떠한 생물적 존재보다 흥미로운 작품소재가 되었다.

들여다보면 개미는 성충으로 겨울을 나는 동물이기에 식량이 풍부한 계절 동안 부족한 시기를 예상, 여분의 식량을 수확하고 저장해야만 한다. 인간의 산업혁명 이후 여러 자원들의 축적이 오늘날의 대규모화된 복잡한 경제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개미의 경제활동은 군락을 통하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철저한 분업의 경영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른바 ‘번식분업’이란 여왕개미를 통해 알 낳는 일에만 전념하고, 스스로 자식을 키우기를 포기하고 일개미가 이를 담당하게 되는 불가사의한 일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는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상황을 이미 실행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번식이 구조적으로 분업화된 사회에서 생산성의 극대를 위해 개미조직이 이룩한 분업제도는 오늘날 인류사회에서 볼 수 있는 고도로 조직적인 기업의 공장 경영을 넘어간다. 더욱 놀라운 점은 담당업무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다른 일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한몸과 같다는 의미에서 ‘초개체(Superorganism)’라 불린다.

이쯤에서 나오면, 현재 우리가 머무는 현대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의 의식에서 망각된 존재, 그러나 도시와 자연의 경계선에서 발견하게 되는 한 마리의 개미를 상상해 보자. 개미는 절대적 집단으로 이해한다면 반드시 그 한 마리의 최종 목적지는 자신의 거대한 활동적 집단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아직도 나는 이 넓고 넓은 공간에서도 그 한 마리를 통하여 ‘고독’을 발견하지 못하며, 더군다나 ‘고독사’는 상상할 수 없다. 이는 같은 죽음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미물적 존재에 대해 편협한 오만이 아님은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우리는 어떤가? 거대한 집단과 잘 구성된 시스템 속에 발견되어지는 나 자신은, 우리는? 항상 관계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위가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배려하고, 소유하고, 공유하려 하지만 그 목적지에서의 우리 모습은 과연 어떨지 전혀 모르고 오늘을 살고 있다. 왜 이렇게 화려한 문명 속에서의 우리에게는 ‘고독’이라는 향기가 강한 것일까? 나는 만약 내가 가진 문명적 조건들을 모두 내려놓고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목적이라면 어쩌면 나는 이러한 벌레로 불리도 좋으리라.
 
김홍진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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