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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속 밀양…숨어 앉은 옛이야기들(52) 월연정 찾아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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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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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경당
쌍경당


요새는 어디를 가나 봄꽃들의 황홀한 향연장이 펼쳐져 있어 화향의 유혹에 이끌린 상춘객이 들떠서 들끓는다. 훈훈한 봄바람에 묻어오는 꽃냄새는 새파란 푸성기의 풀냄새에다 물이 오른 나뭇가지의 새움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가 봄갈이 한 흙냄새와 함께 어울려서 상큼하면서도 야릇한 냄새를 품어내는데 갑작스런 기온의 급상승으로 피고 지는 순서도 없이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서 글자 그대로 만화방창이다. 길섶의 개나리가 아직도 어깨춤에 신이 났고 비탈진 산에는 무덕무덕 진달래가 청솔가지 틈새마다 숨은 듯이 만개했고, 지켜보던 목련꽃도 아직은 질 때가 멀었다며 흐뭇하게 즐기는데 이름 모를 풀꽃들은 목을 뽑아 훔쳐보고 가로수로 늘어 선 벚꽃까지 활짝 핀 채 이화피고 도화 피니 변고는 아닐 게고 이 무슨 축복인가.

자색으로 끝동대고 노란 고름여민 홍매/ 연녹색 댕기드린 청매와 어우러져/

소복단장 백매와 길 떠날까 하건만/ 도리행화 서둘러 피어 한사코 잡는구나.

한낮의 기온이 초여름 같은 유별난 봄 날씨에 화향에 미리 취해 봄바람이 들었는데 쑥부쟁이 무침에다 달래 넣은 양념간장의 아침밥상이 봄을 한가득 차려 놓고 봄꽃 축제의 초대장까지 옆구리를 찔러대며 충동질 하는 바람에 집을 나섰다.

영남루의 유명세에 밀려 돌아앉은 채로 500년 세월의 시간이 멈춰버린 비경이 있어 밀양을 찾아 길머리를 잡았다. 봄바람을 타고 꽃바람을 잡으며 얼룩진 역사속의 옛 이야기가 묻혀 있어 더욱 감칠맛이 나는 풍치와 운치를 흠뻑 맛보고 싶어서였다. 남해고속도로 동창원 요금소를 나와 25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을 하며 밀양 초입의 밀양강 예림교를 지나 가곡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밀양대로를 따라서 다시 한 번 밀양강을 건너는 용두교를 지나 삼문동을 가로 질러 또 한 번의 밀양강을 건너가는 밀양교로 차를 몰았다. 청룡이 긴 꼬리 끝을 8자로 휘감아 돌아치는 용화백자의 그림 같은 밀양강과 건너다보이는 영남루의 풍광이 멋으로 장관이고 운치로는 속계를 벗어난 그림 같은 선경이라서 밀양교를 건너가야 밀양의 제멋이 나는 길이다.

아랑아씨까지 연상하며 한참을 건너다보던 영남루를 옆에 두고, 밀양관아의 정문을 마주보고 용평로로 접어드는 우회전을 하여 오른쪽으로 밀양강을 끼고 벚꽃이 만개한 가로수를 따라 잠시만 가면, 하얀 돌기둥을 세운 팔작지붕의 우뚝 솟은 문루가 안채 건물을 감추듯이 숨기고 밀양강을 굽어보며 추화산 끝자락에 초연히 홀로서서 외로움을 달래는데, 정적속의 안채는 용호정(龍湖亭)이고 2층의 문루는 심경루(心鏡樓)라는 편액을 달았다. 언제나 마음을 비춰보며 고고함을 지켜오던 신선 같은 선비들은 갓끈 고쳐 매고 도포자락 펄럭이며 어디로 떠났는지 텅 빈 문루는 덩그렇게 홀로서서 적적함이 배여난다.

헤픈 정 다 퍼주고 텅하니 비어버린 내 마음이야 비춰본들 뭣하랴! 발길을 돌려서 산모롱이를 돌아들자 벼랑 옆으로 난 길은 차선 하나 너비로 좁아지더니 자그마한 터널 속으로 희끄무레하게 빨려 들어갔다. 터널 옆으로 비스듬하게 산기슭을 기어오르는 시멘트포장의 비탈길과 벼랑을 타고 강섶으로 난 오솔길이 제마다의 특이한 멋을 내며 산과 강이 어우러진 틈새에서 운치 어린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벼랑에 붙은 작은 안내판은 영화 ‘똥개’의 촬영장이었다고 일러주는데 터널 깊숙이 환하게 빛살이 비쳐서 들어 가 보았더니, 터널 중간쯤에서 하늘을 잠깐 볼 수 있는 천공이 있어 두 개의 터널이 틈새를 끼고 이어진 깨난 긴 터널이다. 1905년에 개설된 경부선 철길인데 1940년 경부선의 복선화로 철길은 이설되고 지금은 일반 도로로 이용되고 있단다. 부모형제 이별하고 처자식도 떼어놓고 강제 징용한 이 땅의 젊은이와 수탈한 물자를 바라바리 부산항으로 실어갔던 일제강점기의 한 많은 경부선! 민족의 설움을 싣고 울분에 겨워 시꺼먼 연기를 칙칙폭폭 토하면서 원한 맺힌 울부짖음의 기적소리는 세월에 떠밀려서 멀어져 갔어도, 못다 푼 원한을 끓어 안고 몸부림치며 달려야 했던 시커먼 열차는 아직도 우리의 가슴속을 헤집으며 달리고 있다.



월연정 전경
월연정 전경
용호정 심경루
용호정 심경루


터널 옆으로 난 벼랑을 타고 도는 오솔길로 들어서자 강섶은 수직의 절벽을 이루는데 산비탈을 깔고 고래등 같은 예닐곱 채의 기와집들이 추녀 끝을 맞대고 축대 위에 눌러앉아 까마득히 먼 옛 시간에 멈춰버려 고색창연한 비경을 오롯이 들내고 있다. 높다랗게 쌓아 올린 축대위로 두 개의 대문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쌍경당의 내정으로는 들어 갈 수가 없으나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바깥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절승이고 비경이다. 쌍경당과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돌다리로 이어진 월연대는 밀양강 절벽위의 커다란 바위를 기단으로 삼고 바위의 크기와 건물의 크기를 조화롭게 안배하여 한눈에 보아도 거슬림이 없이 전체가 하나의 자연으로 융합된 한 폭의 그림이다. 정면과 측면 각3칸으로 아홉 칸의 월연정은 방 한 칸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마루청이 깔린 정자로서 팔작지붕의 곡선이 학이 나는 듯이 날렵하고 멋스럽다.

추화산 둘러쳐서 북풍한설 멀리하고

기암절벽 방석삼고 백송을 벗을 삼아

배롱나무 그림자를 살포시 끌어다가

양 무릎을 덮고 앉아 밀양강에 발 담근 채

청풍을 가락 삼고 명월을 등불삼아

쌍경당과 월연대가 용호에서 마주보니

월연정은 절승이고 찾는 이는 신선일세.

말을 더하면 흠을 낼까 염려되는 그림 같은 절경이다.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자연지형과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빼어난 정자로서 조선중기의 한림학사를 지낸 월연 이태 선생께서 조선조 중종 14년의 기묘사화를 피하여 이곳으로 찾아들어 월연사가 있던 자리에 월연정사를 세웠다는데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월연대와 쌍경당이 추화산을 병풍으로 삼고 밀양강을 앞마당으로 삼아 다정다감한 정취가 찾는 이의 넋을 뺀다. 보름달이 뜨면 강물에 비춰지는 달빛 기둥의 월주가 생긴다니 선생께서는 기묘사화로 사사당한 기묘명현들이 월주를 타고 하강하여 야심토록 함께하자는 뜻이었을까! 범부가 어찌 성현의 뜻을 알겠냐만 청풍명월을 탐하는 값이라도 하시려함이든지 국정운영과 선비의 길을 가르치며 많은 후학을 기르셨다니 국민을 누가 그럴싸하게 잘 속이느냐로 무리를 지어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한 작금의 정치현실 앞에서 선생의 체취가 그리워지고 정녕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묻고 싶어 아쉽다.

월연대 아래로 반석의 틈새를 비집고 벼랑 끝에 비스듬하게 높이 선 나무가 예사롭지 않아서 바위에 올랐더니 둥치와 가지의 겉모양은 플라다나스 나무 같은데 잎은 분명한 솔잎이다. 희귀종인 백송이라고 안내판은 일러주건만 백송을 심은 뜻은 알 수가 없으나 낙락장송이 우거진 아래로 꾸불꾸불한 배롱나무 속에서 고귀한 자태가 눈길을 끈다. 주변 풍광을 마음껏 즐기고 싶어 오르거나 앉아 보고 싶은 누각이나 정자가 대부분인데, 속계를 등지고 돌아앉은 월연정은 거리를 두고 바라다보는 정자로서 바라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정자이고 신선이 보이고 성현이 보이는 선경이요 비경이다. 월주가 서는 만월의 밤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려서 명종조에 좌승지를 지낸 이태 선생의 손자이신 이광진 선생의 별서인 백곡재가 있는 금시당을 향해 심경루 아래에 있는 활성교를 건너서 암새들을 휘감아 도는 밀양강둑길을 따라 용두산 기슭의 소나무숲길을 찾아들었다. 수백년 노송의 거북등 같은 껍질은 세월의 깊이를 일러주고, 금시당과 백곡서재의 검은 기와는 세월의 무게를 말하려는데, 좌승지의 근엄함이 배여서 일까 고결한 성품을 닮아서일까, 450년 노구의 은행나무는 험 집 하나 없이 정갈하고, 활짝 핀 뜨락의 고매는 그 향이 은은한데 밀양강 굽이도는 용호(龍湖)를 굽어보며 금시당과 백곡재는 용두산 병풍에 한 폭의 그림이다.

/지역문제연구소장

금시당
금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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