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남강 절벽 바위글씨 인물 열전 <7·끝>
진주 남강 절벽 바위글씨 인물 열전 <7·끝>
  • 경남일보
  • 승인 201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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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글씨로 본 경상우병사·관찰사
진주성내 촉석루 아래 절벽 바위에 새겨져 있는 이름의 주인공이 확인된 경우는 채 30명도 되지 않는다. 하강진 교수(동서대학교 영상미디어학부 영상문학 전공)의 논문에 따르면 세월에 마모돼 이름을 확인할 수 없는 인물들을 포함하면 남강 절벽에 새겨인 바위글씨의 주인공은 4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진주 남강 절벽 바위글씨 인물 열전’에 소개된 인물은 28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름은 확인 가능했더라도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그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활동도 요구되고 있다./편집자 주



바위글씨는 단단한 자연석에 글자를 새겨 넣는 일종의 기록문화이다. 대개 학자나 벼슬아치들이 바위 표면에 직접 붓글씨를 써 놓거나 별도의 종이에 써 주면 고용된 전문 장인이 그 글씨형태로 새겨 넣었다. 주로 바위에는 유람객이나 경관 자체의 이름, 경관 특징이나 유래 등을 새긴 것이 많다.

진주 남강 절벽에 새겨져 있는 바위글씨 역시 이곳에 근무하던 벼슬아치나 인근에서 유람왔던 인물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 대다수가 벼슬아치들인 것으로 미루어 주민들의 존경심의 발로에 의해 새겨졌을 가능성 보다 스스로 헛된 공명심에 잡혀 마구잡이로 새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일부는 권력자에게 아부하기 위해 아첨꾼들에 의해 자연경관을 훼손하면서까지 바위글씨가 새겨졌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위글씨의 인물들을 분석해 보면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새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체로 1884년부터 1927년까지 약 40여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절벽 바위에 글씨가 각인됐다. 바위글씨가 삼국시대부터 새겨져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주성 촉석루 아래 절벽 바위에는 다른 시기 인물의 이름은 전혀 없고, 1880~1930년 사이 인물만이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즉 진주성에 경상우병영이 설치된 시점(1603년) 이후부터 1880년 이전까지 경상우병사나 진주목사의 이름이 단 한명도 바위글씨가 없다는 점도 연구해 볼 일이다.


◇바위글씨로 본 경상우병사

조선 전기에는 경상도에 3명의 병마절도사(병사)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관찰사가 겸임했다. 그리고 낙동강을 기준삼아 경상도를 동서로 나눈 군사구역으로서 좌도와 우도를 설정해 좌병사의 병영은 울산에 두고 우병사의 병영은 창원의 합포(지금의 마산)에 두었다. 이후 경상우병영이 1603년 진주로 이전된 후 경상우도병마절도사(무관 종2품)로 하여금 진주목의 목사(문관 정3품)를 겸임하게 함으로써 진주목사를 따로 발령하지 않았다. 이후 경상우병영은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다가 갑오개혁으로 1895년 병영제도가 폐지되면서 없어졌다.

남강 절벽에 새겨진 바위글씨의 인물을 열거하면 1895년 병영제도가 폐지될 때까지의 경상우병사 계보가 확인된다. 바위글씨에 나타난 경상우병사의 발령 순서는 백남익(1882.10~1884.4)→한규설(1884.4~1885.8)→윤영규(1885.8~1885.3)→정기택(1886.3~1888.2)→박규희(1888.3~1890.1)→채규상(1890.1~1891.12)→서정규(1891.12~1893.12)→민준호(1893.12~1894.8)→이항의(1894.8~1895.5)로 이어졌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경상우병사로 재임했던 윤영규 박규희 서정규 민준호 등 4명의 경상우병사 이름은 남강 절벽에 보이지 않는다.

◇바위글씨로 본 경상남도관찰사

1895년 8도의 부·목·군·현이 폐지되고 23부로 나누어진다. 이에 경상도는 진주·동래·대구·안동부 등 4개부가 설치되고, 관찰사를 두었다. 이어 1896년 경상도가 남북으로 분할되고, 경상남도관찰부가 진주에 설치되고, 수장으로 관찰사가 임명됐다.

바위글씨를 바탕으로 진주관찰부와 경상남도관찰부에 부임한 관찰사를 보면, 병영제가 폐지 때까지 경상우병사를 맡았던 이항의는 진주관찰사(1896.2~1896.6)에 이어 곧바로 경상남도관찰사(1896.6~1897.4)에도 잇따라 부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은용(친일 매국노 이지용과 동일인)은 1889년 7월부터 1900년 6월까지 1년간 경상남도관찰사를 맡았으며, 이은용 후임으로 김영덕이 부임한 것도 확인됐다. 김영덕은 1900년 6월부터 1901년 9월까지 경상남도관찰사를 맡았다. 남강 절벽 바위에는 경상남도관찰사의 이름은 3명만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항의와 이은용 관찰사 사이에 재임했던 관찰사와 김영덕 관찰사 이후에 재임했던 관찰사의 이름은 남강 절벽 바위에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1896년부터 1910년까지 많은 인물들이 경상남도관찰사를 재임했음에도 단 3명의 이름만이 절벽 바위에 각인돼 있다는 사실에 대한 연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즉, 당시 관찰사 보다 직급이 낮았던 부사(김재은·신종균·신복균)와 군수(이범주·이규대·정일용·한규직·이병직·조중익), 현령(윤명근), 영장(김응모)까지 이름이 각인돼 있는데다 부사·군수·현령·영장 보다도 직급이 낮았던 경상남도관찰부 주사(이용상·황재돈·한병구·황의호)와 경상남도관찰부 총순(이석구), 경상남도관찰부 교원(윤대선)들의 이름들도 새겨져 있다. 게다가 심지어는 화가와 기녀 등 일반인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경남에서 최고 높은 직위의 관찰사 이름이 대거 빠져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3명 이외의 관찰사 이름은 훼손이 심각해 확인이 불가능했거나, 아직 찾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바위글씨에 대한 전면적·체계적 연구 시급

남강 절벽에 새겨진 바위글씨는 근대계몽기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던 인물들이 많다. 현실정치를 주도해 영화를 누린 인물, 역사에서 지울수 없는 과오를 저질러 지탄받는 매국노, 나라를 빼앗기자 울분을 참지 못해 자결한 순국지사, 절대 권력자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이를 과감히 질타하다 목숨을 버린 기녀 등 암울했던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이름이 총망라돼 있다.

남강 절벽은 진주위 충절정신을 내면화하고, 뼈아픈 역사를 반추할 수 있는 교육현장으로, 단순한 관광명승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강진 교수는 “진주성의 역사문화경관은 촉석루를 위시해 임진왜란과 관련된 기존 건물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왔다. 그렇기에 남강의 바위글씨가 지대한 가치가 있는데도 제대로 주목하지 않았다”며 “절벽 암반은 촉석루를 지탱하는 장대한 받침돌이거나 철 따라 아름다운 운치를 연출하는 경관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진주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바위글씨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조언하고 있다.

하강진 교수는 “남강절벽의 바위글씨는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며 “당국에서는 관련업무를 강화하고, 시민들은 뜻을 모아 남강 절벽의 위상을 드 높이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주위 경관에 어울리는 ‘바위글씨 탐방다리’ 설치, ‘친환경 바위글씨 탐방선’ 운행, ‘바위글씨문화관’ 건립 등 진주시가 남강 절벽 바위글씨를 중심으로 전국에 산재한 바위글씨를 모아 전시하는 공간을 갖추면 진주는 독특한 문화콘덴츠를 보유한 지역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창민기자

자료 제공=하강진 동서대학교 영상미디어학부 영상문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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