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7회)
  • 강민중
  • 승인 2014.04.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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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1. 민들레와 삿갓나물
김동민 연재소설(107회)

8장 1. 민들레와 삿갓나물



“성청길을 좌방어사로, 조경을 우방어사로 삼아, 조령과 추풍령 지역을 적극 수비토록 하시오!”

그러나 모든 것이 첩첩산중, 망망대해였다. 아무리 지존인 임금 엄명이라 할지라도 그 밑에 있는 신하들이 힘이 없을 때, 왕의 권위는 저절로 실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변사에 임명된 이일은 처음부터 막막하고 황당했다. 거느리고 갈 장병이 없었다. 양반 자제들은 병역 면제였고, 모병에 응한 이들은 대부분 한량과 건달패였다. 결국 그는 장기 군관 60여 명만 거느리고 뒤늦은 출발을 했고, 군사는 별장 유옥이 모집해 뒤따라가기로 했다.

한편 경상순찰사 김수는 제승방략의 동원 체계를 좇아 군사를 모아 정해진 위치에 대기하라고 각 고을에 통지했으며, 이에 따라 문경 이하의 수령들은 모두 군사를 이끌고 대구로 집결했다. 하늘에는 구름들이 느릿느릿 이동하고 있었다. 나뭇가지 끝에 앉은 새들은 날아갈 방향을 찾는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경상도 지역의 육군과 수군을 관장하는 병사와 수사의 직속상관이자 지방행정관인 김수. 그의 정체성은 다소 흐릿하다. 그의 사후, 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이항복은 나라의 충신을 잃었다고 탄식한 반면, 조정에서 권력을 멋대로 휘둘렀다는 신급의 상소도 있다.

여하튼 전투태세가 그런 대로 갖춰졌다. 하지만 이들의 총지휘권자인 순변사 이일이 며칠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고, 더욱이 이 지역 지휘관인 박홍과 이각은 행방불명되어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박홍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김수가 수령들 앞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수령 하나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가 활을 쏘아 맞히지 못한 짐승은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수령도 말했다.

“한 번은 물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서른 명도 넘는 무리들이 시비를 걸자, 혼자 주먹을 휘둘러 굴복시켰다고 하지를 않습니까? 그 용맹과 실력을 가진 그가…….”

난을 일으킨 북방 오랑캐 추장을 유인하여 항복을 받아내기도 한 박홍이었다.

“이각은 또요?”

김수 말에 응했던 수령이 이번에는 이각을 입에 올렸다.

“비록 낮은 벼슬을 살면서도 불평불만이 없고, 특히 직무에 충실하다고 알려진 사람이 아닙니까?”

누군가가 혼잣말같이,

“왜구들이 무서워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순변사께서는 다른 곳을 살피러 가신 것 같습니다.”

중대한 결전을 눈앞에 두고 슬렁거리는 것은 장수들만이 아니었다. 사병들 사이에서도 걱정과 우려에 싸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이게 무슨 망조인고?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게. 오라는 이들은 오지 않고, 쓸데없는 비만 왜 이리 오는고?”

수적인 열세에다가 연일 큰비까지 내려 군량마저 바닥이 나자 군사들 사기는 급격히 떨어지고, 마침내 야음을 틈타 도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제승방략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나쁜 현상이었다. 제승방략 체제는 자연향촌단위의 군사를 군사거점이나 집결지에 모은 뒤, 그 지역이 아닌 한양의 장수가 내려와 이들을 지휘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 체제는 억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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