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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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1. 민들레와 삿갓나물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세종 때 4군6진을 개척하며 왜구 소굴인 대마도 정벌까지 단행한 군사강대국이던 조선이, 세종 이후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아서 장부상에는 군인이 존재하나 실제 군인은 없는 황당한 사태가 생겨났다.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쉬웠다. 그것은 양반사대부들의 가혹한 수탈과 토지겸병으로 진관체제의 근간이 되는 자연적인 향촌이 많아진 탓으로, 할 수 없이 제승방략이란 것을 채택한 결과였다.

이일이 문경을 거쳐 상주에 도착해 보니 웬 영문인지 상주목사 김해가 보이지 않았다. 판관 권길에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기막혔다.

“산속으로 달아나 버린 듯합니다.”

“무, 무어라? 목사가 도주를……?”

이일은 때가 때인지라 억지로 화를 삭이며 명했다.

“우선 창고를 열어 백성에게 곡식을 나눠주고 군사를 모집토록 하시오.”

그 일이 효과를 보았다. 얼마 후 이런 보고가 들어왔다.

“농민 8백여 명이 지원해 왔습니다.”

“역시 이 나라 백성 중에는 농민이 최고요.”

이일이 용기를 얻은 듯 기운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 휘하 군사 60여 명과 그 농민병들을 합해 군을 편성해야겠소.”

“좋으신 생각입니다. 강한 군대가 되리라 봅니다.”

이일은 관아 마당에 모인 그들을 향해 말했다.

“잘 듣거라. 너희들은 왜놈들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사실상 최초로 편성된 조선의 주력방어군이다. 너희들 임무가 참으로 막중하다.”

조일전쟁 최초의 조선 주력방어군-그것은 대단히 크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일의 말대로라면 외부 적으로부터의 공격을 막기 위한 본격적인 방어태세를 조직하고 형성한 셈인 것이다.

그날 저녁 달이 뜰 시각이었다. 휘하 군사 하나가 와서 고했다.

“개령에 사는 어떤 백성이 장군을 뵙고자 합니다.”

원래 변진의 감문소국(甘文小國)이었다가 신라 진흥왕 때 청주로 고치고 군주(軍主)를 둔 곳으로, 훗날 김규진이 불을 붙여 농민봉기가 일어나기도 하는 개령이었다. 이일은 무척 피곤했지만 그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래 무슨 일이냐?”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와들와들 떨면서,

“왜, 왜적이 이 그, 근방까지 와, 와 있사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일은 무섭게 화부터 냈다.

“무슨 소리냐? 왜군이 이 근방에 와 있다고? 그럴 리가 없다. 저놈들에게 날개가 달려 있다면 모를까, 어떻게 그리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러잖아도 지금 우리 군사 수가 적어 걱정이거늘, 어디서 그따위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기마저 떨어뜨리려는 것이냐?”

그러자 개령 백성은 한층 머리를 조아리며 소리 높여 고했다.

“사실이옵니다.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사옵니다.”

이일이 두 발로 바닥을 구르며 소리쳤다.

“어디서 헛것을 본 걸 가지고 계속 헛소리를 하고 있구나. 여봐라, 저놈을 당장 옥에 가두어라!”

이윽고 나타난 달이 관아 나뭇가지 사이로 노란 빛살을 내뿜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오랫동안 굶주려 부황에 걸린 사람 얼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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