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절망으로 간다
희망이 절망으로 간다
  • 경남일보
  • 승인 2014.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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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진도 앞바다 학생 수학여행단들이 탄 여객선 침몰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참담한 분위기이다. 경주리조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느닷없는 지붕 붕괴사건으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한 것이 엊그제인 것만 같은데 또 꽃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참사가 일어났다니 사고로 얼룩지는 바깥세상이 무서워 외출이 두려워질 지경이다.

그러나 집안에만 있다고 해서 그것도 결코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일부 채석장에서 채취한 골재들이 오염되어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들에서 발암물질인 라돈이 검출된다고 한다. 그 자재로 지은 집을 우리들은 보금자리로 알고 살고 있다.

생전 담배를 피워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폐암에 걸리고 어느 집 아이방 벽에서 라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는 것을 보고 경악하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자연 친화적인 회귀를 꿈꾸는 마당에 땅이 오염되어 암반에서 침투한 라돈이 사람까지 병들게 하는 세상이다. 인간의 자연수명은 점점 늘어나 100세 시대를 향해 있지만 무병장수한다면야 더 할 복이 없겠으나 장수에는 질병의 고통이 접면하고 있기도 하다.

아직 부모 손길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을 친부와 계모가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고, 게임중독인 부모는 게임방에 가기 위해서 잠들지 않고 보채는 아들을 목 졸라 죽이는 세상, 마지막 보루인 가정까지 저당잡힌 셈이 되고 말았다. 가정도 아니고 사회도 아니고 무엇이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 이제 우리에게 안전지대는 없는 것인지 한탄이 절로 나온다.

20여 년 전 이제 갓 피어나는 유치원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씨랜드 화재사건. 아들을 잃은 국가대표 하키선수였던 엄마는 훈장을 반납하고 안전불감증인 이 나라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고 미련없이 이민을 떠나버렸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는 모양이다. 이제는 재난으로부터의 보호가 공적인 시스템을 믿지 못하고 결국은 개인 각자의 몫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안전에 관한 기본 매뉴얼 정도는 본인이 챙기고 알아야 할 판이다.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만 살 수도 없는 상황이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바깥 출입이 잦은 세상에 살면서 비행기가 추락하고 배가 침몰할지, 차 사고 날까 우려하여 모든 것들을 외면하고 생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에는 권장 항로가 있건만 제 길을 가도 변을 당하는 마당에 우회해서 가는 길에는 어떤 위험이 따를지 예상되는 일이다.

가라앉는 배 안, 생사의 갈림길의 긴박한 상황에서 ‘엄마, 내가 미처 말 못할까봐.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냈다는 열여덟살의 아이는 어쩌란 말인가. 금쪽 같은 자식들이 실종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오열하는 가족들. 배안에 갇혀 있는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지만 부모들은 자녀들의 생사 확인에 애가 타고 있다.

실시간 뉴스를 보면서 말도 안되는 오락가락하는 상황들 때문에 소름이 돋는다. 400여명을 태운 세월호 선장은 배가 기울자 아무런 구조조치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이 선두에서 구조선을 타고 살아 남았다. 선장으로서 제 할 일을 다했다면 가슴을 치는 부모들이 조금이라도 더 줄었을 텐데, 국민적 공분을 사고도 남는 일이다.

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그렇게 속절없이 가는 것이 무어란 말인가. 채 피어 보지도 못한 꽃송이들, 지상의 어떤 위로가 떠나간 자리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흐린 하늘 아래 다만 고개 숙일 뿐이다. 이렇게 몇 날이 지났지만 좀처럼 참담함에서 벗어나질 못하겠다. 예전에는 세상이 참 아름다운 거라고 믿고 살았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세상살이는 점점 더 팍팍하고 사나워진다.

첫물 찻잎 따는 곡우라고 차밭에 가자 청하는데 야들야들 올라오는 햇순을 어찌 따 담을 것인지 심란하다. 슬금슬금 후유증이다.

 

황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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