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시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시대
  • 경남일보
  • 승인 2014.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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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21세기 양극화체제는 역사가 진보한다고만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착각을 여기저기서 깨뜨리고 있다. 보통 16~18세기를 지칭하는 구체제(ancient regime)의 사람들은 혈연을 통해 신분을 드러냈고 신분을 통해 인간의 척도를 구성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부(富)를 인간의 척도로 만들었고, 21세기 그 척도의 수위를 구체제보다 더욱더 높게 잡아 1%의 양극화를 달성했다. 구체제의 왕, 귀족은 보통 전체 국민의 10~15% 정도 되었다 하니, 현재 양극화체제의 상위 1%에 비하면 도리어 상당히 평등한 체제가 아닌가?

부의 양극화체제는 국가 간 질서에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전 세계 200개가 넘는 국가 중 G20을 그나마 먹고살 만한 나라로 본다면 10%의 국가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으며 최강대국 미국과 중국을 G2로 본다면 1%의 국가가 세계의 부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구체제 시절, 세계 각국은 전반적으로 그런대로 먹고 살아 갔으며 강대국이 서너 나라(영국, 스페인, 프랑스, 중국, 터키 등) 있었다 해도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한 나라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리 본다면 구체제 시대가 더 살 만한 때가 아니었던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G20과 같은 선진국들은 가치를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보전하여 권력을 유지할까 하는 공멸의 망상으로부터 벗어나 21세기 세계 국가적 삶의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 가난과 빈곤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저개발국들의 자원을 보존시키고 선진국의 역사가 저질러 놓은 자원과 인력탈취의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자연을 놓아두어야 한다. 그래야 개발, 성장 같은 추상적인 부의 단어들을 극복하고 구체적으로 자생할 수 있다.

구체적인 자생의 방법 중 하나가 ‘적정기술’이라는 것이다. 개념적으로 본다면 ‘적정기술’은 사용되는 지역, 사회공동체의 사회적·문화적·산업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술이다. 즉 인간의 삶의 질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자. 아프리카에서는 정수시설이 없어 구정물을 그대로 마신다. 기생충으로 인한 질병을 달고 생활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본 기술자는 섬유조직과 요오드필터, 활성탄을 넣어 만든 휴대용 정수처리 장치인 ‘라이프 스트로우’를 만들어 이들에게 언제나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준 사례가 있다. 필리핀에는 철길 옆 가난한 작은 마을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집안이 어두워서 낮에도 책을 볼 수가 없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런 마을에 페트병으로 전구를 만들어 마을사람들에게 빛을 선물해 준 사례가 있다. 페트병에 물과 형광물질을 섞어 넣고 천장에 구멍을 내어 병을 끼우면 태양과 달빛이 굴절되어 어둠을 밝히게 된다.

운송수단과 전기가 없는 나이지리아에서는 수확한 토마토를 며칠 후 버리게 된다. 토마토를 대기 중에 2∼3일 노출시키면 못 먹기 때문이다. 이에 운송수단이나 전기가 없어도 21일 동안 보존할 수 있는 ‘항아리 저장고’를 만든 사례가 있다. 작은 항아리와 큰 항아리 사이에 모래와 물로 채운 중간층을 두어 내부의 온도변화를 최소화함으로써 과일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술이 모두 아프리카, 필리핀, 나이지리아의 자연 및 사회환경에 꼭 맞는 것들이다. 이렇듯 ‘적정기술’은 처한 환경에서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진정한 나눔의 정을 느낄 때 지구촌 인류가 좀 더 행복해지게 될 것이다.

 

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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