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핀 꽃…그 곳에선 활짝 피어라”
“못다핀 꽃…그 곳에선 활짝 피어라”
  • 이은수
  • 승인 2014.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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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단원고 사망학생 빈소를 가다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 앞 노란 리본 사이로 노제를 마친 단원고 희생 학생 운구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나 춥고 무서웠겠니, 어른들을 용서해다오!”

지난 25일 밤 8시 안산 제일장례식장. 못다핀 꽃들을 추모하며 저마다 오열했다.

경찰이 빨간색 안내봉을 들고 교통정리에 나선 장례식장은 저녁시간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온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특히 진도 여객선 참사로 학생들을 많이 잃은 탓에 여느 장례식장과 달리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그중에는 자원봉사를 자청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단원고운영위원회, 학부모회, 봉사단은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현수막을 입구에 걸었다. 안산시 통합재난심리상담소는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별도의 부스를 운영했다. 관계자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안산시민 모두가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물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근조(謹弔)’라고 적힌 검은색 리본을 단 사람들이 안내를 했고, 노란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 곳에는 모두 8명의 학생들의 시신이 안치됐다.

2층에 올라가 이재욱 학생의 빈소를 찾았다. 앞서 여학생들이 조문을 하고 있었다. 둥근테 안경을 낀 재욱이 사진 앞에 헌화하고 묵념을 한 뒤 가족과 인사를 나눴는데, 목이 매어 말을 잇지 못했다. 정적이 흐르자 자원봉사자가 “부모님을 꼬∼옥 안아주세요!”라고 했다. 재욱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학생들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고맙다”고 한다. 이에 끝내 참았던 울음보를 터트렸다. 너무 침통할까봐 가급적 곡하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했지만 비통한 마음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을수는 없었다. 창원에서 5시간여 버스를 타고 상경한 수철씨는 동네 형을 부둥켜 안고 절규했다.

“좋은 곳에 갔다. 그 곳에서 활짝 피어날 것이다.” 오히려 조문객을 위로한 재욱이 아버지였지만 꽃다운 나이에 떠난 아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활달한 성격의 재욱이는 ‘야마카시’를 즐겼다. 건물타기, 건물 뛰어넘기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했기 때문에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올 것이란 희망을 가졌지만 끝내 싸늘한 주검이 됐다. 단원고 3학년에 재학중인 재욱이 누나는 동생을 잃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같은 반 학생들은 실종 2주째가 됐으나 대부분 생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조문객들은 정부의 무능한 대처를 질타했다.

박희철(47)씨는 “어른들이 구해줄 것이라 믿고 아이들이 객실안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끝내 외면했다”며 “캄캄한 객실에서 학생들이 고통받을 동안 제대로 한 것이 뭐가 있느냐, 학살이나 마찬가지”라며 부실한 대처과정을 질책했다 그는 “가족들이 힘들때 그나마 자원봉사자들이 정성껏 도와주며 아픔을 나눴다”며 “주변의 따뜻한 관심이 큰 위로가 되고 있다”고 했다. 재욱이 아버지의 고향친구인 희철씨는 지난 20일부터 진도 앞바다에 내려가 가족들과 함께 재욱이가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태양볕에 얼굴은 검게 그을렸다.

이수철(44)씨는 “세월호 참극은 설마 어떻게 되겠어라는 안전불감증, 관행이라는 이름의 위법행위와 무사안일의 일부 공무원들의 행태 때문에 발생한 인재”라며 개탄했다.

박동주(44)씨는 “부처간 통합체계 구축 등 위기대응 메뉴얼을 만들어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됐고 화를 키웠다”며 후진국형 인재가 반복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재욱이 삼촌은 “살아서 돌아올 것이란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지만 좌충우돌하는 구조과정을 지켜본 가족들의 상실감이 크다”고 전했다. 조문객들은 빈소에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을 통감했다.

안산지역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시신이 잇따라 수습되면서 유가족들이 장례식장 빈소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산의 장례식장은 모두 12곳으로, 빈소는 모두 52실, 92구를 모실 수 있는 안치실을 갖추고 있지만 빈소가 부족해 일부 유가족들은 빈소가 비기를 기다리고 있다.

26일 오전 장례식이 엄수됐다. 재욱이의 발인식은 유족들의 오열 속에 치러졌다. 단원고 정문에는 세월호 사고의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노란 리본이 달렸다. 학생들은 이날 아침 운구 행렬이 학교에 도착하자 고개를 떨궜다. 마지막 등교를 끝낸 운구행렬은 화장장으로 향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장례식을 마친 재욱이는 추모공원에 안치됐다.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에는 오늘도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안산에서=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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