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기자
지난 1989년 특별조치법안이 발의됐다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고, 1996년 특별법 제정에 이어 2004년 유족 보상금 지급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이 통과됐으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건 총리가 국가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이후 ‘거창사건 특별조치법’은 지난 18대 국회에서 모든 절차를 거쳐 만장일치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아무런 해명과 이유 없이 갑자기 빠져버린 후 19대 국회에서도 역시 법사위에 계류돼 있어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정부가 돈타령 등의 이해할 수 없는 구구한 핑계논리에 국회까지 맞장구를 치고 있다며 분노하고 있다. 이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2일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는 제63주기 거창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엄숙하게 봉행됐다. 사실 이날 열린 위령제 및 추모식 행사는 제주 4·3사건 등 여느 행사와는 달리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지역 국회의원과 기관장, 주민 말고는 정부 측 고위인사라고는 얼굴 하나 비추지 않았다.
해방 직후에 이념대립 때문에 많은 희생자가 났던 제주 4·3사건이 일어난지 60주년이 되던 지난 2008년 4월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한승수 국무총리와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등 정부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머리를 숙였다. 이에 비춰 거창사건 희생자들은 아직도 명예회복의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지난 2000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신원면 대현리 일대에 추모공원이 건립된 것이 고작이다.
정부나 국회는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거창사건에 대한 특별법 제정에는 소극적인 탓에 여전히 겉돌고 있다. 하루속히 ‘거창사건 관련자 배상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것이 순리다. 정부·국회가 거창사건을 외면한다면 이는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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