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고 부끄럽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 경남일보
  • 승인 2014.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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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정말 잔인한 4월이었다.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세월호 사고가 우리에게 현재 우리나라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우리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잔인한 4월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은 5월이 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이 아픔이 치유될 날이 과연 올까 싶기도 하다. 희생자와 그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이 아픔을 이겨낼 수 없어 신음하고 있다. 제대로 대응만 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던 생명들이 눈앞에서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무력감과 상실감을 시작으로, 그 이후에 들려오는 이해할 수 없는 중앙재난대책본부를 포함한 정부의 사고수습 행태에 대한 분노, 그리고 허탈감 등으로 지금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지경이다.

세월호 사고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민낯은 이해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차마 바라보기가 부끄러워 눈 둘 곳을 찾을 수가 없다. 특히 수많은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해경과 정부의 사고수습 행태는 우리나라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사건의 진행과정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정부 고위관료들과 기업가들의 마음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혹은 사람의 생명이 아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일반 국민의 생명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이어진 어처구니없이 부실한 대처들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 수십 명의 실종자의 존재가 그것을 말해준다.

국가의 일차적인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이 일차적인 책무조차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 우리는 이제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이 국가이며 무엇이 선(善)이라고 말해야 할지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우리가 겪어 왔던 수많은 사고 수습과정에서 사고의 원인을 찾으면서 드러나는 사고 관련자들의 비리에 분노하면서도 수습의 책임자들이나 정부 관료들에게서 우리가 늘 들어야 했던 말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믿으려고 애쓰며, 믿을 수 없는 사고에 놀라고 분노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세월이 지남에 따라 너무 빨리 잊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 말마저도 믿을 수가 없다. 아니 이제는 과거처럼 믿는 척하고 지나갈 수가 없다. 이번의 수습과정에서 사람의 생명의 소중함을, 피해자와 관련된 사람의 마음을 외면했던 사람들이 그 어떤 사죄를 한다 해도, 어른들의 잘못으로 죽어간 단원고 학생들, 그리고 갖가지의 사연을 안고 그 배에 올랐던 사람들의 희생을 보상할 수 없는데, 하물며 그런 몇 마디의 말을 또다시 믿고 이 사고를 하나의 가슴 아픈 사건으로 지나쳐 보낸다면, 우리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의 죄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우리는 죄인이다. 이전에 일어났던 끔찍한 사고로부터 배우고 고쳐 나가지 못하고, 시간에 따라 잊고 살아온 우리는 죄인이다. 우리 또한 사소한 것일망정 우리가 일상에서 ‘모든 규칙을 다 지키지 않아도 괜찮겠지’, ‘나 하나쯤이야’ 하고 흘려버린 것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사고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사고 책임자들과 정부, 그리고 언론의 행태에 분노하고 좌절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기가 어렵지만, 이번만은 우리가 이 사고를 잊지 않아야 한다. 사고 책임자들과 수습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어떤 처벌을 받는지, 다 망가진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바로잡는지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부터 관행이나 ‘설마’에 영합했던 부분들이 있었다면, 이를 바로잡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고 싶다.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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