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1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1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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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3. 땅 길에서 하늘 길까지
이름 그대로 보배 진주 같은 진주성.

조운과 성 위 다락에 나란히 오른 시민은 아까부터 고을의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운의 눈길도 자연히 같은 방향을 향했다. 거기 멀리로 도읍터의 운수 기운이 매였다는 비봉산이 보였다.

그 산의 서편 자락 가마못 안쪽에 자리 잡은 그의 동네도 그렇지만, 조운의 마음에는 그보다도 더 저 뒤편 분지에 있는 비차 제작장이 강하게 그려졌다. 입구 쪽만 약간 제외하고 나머지 세 면은 야트막한 능선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비밀 장소로서 아주 적격인 명당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저곳이 아니면 내가 작업할 장소가 마땅찮아 어려움이 많을 거야.’

조운과 둘님의 식구들 말고는 지금 그곳에서 소위 비차라고 하는 ‘나는 수레’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었다. 간혹 거기를 지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예사로 보아 넘길 것이었다. 그만큼 마른 짚이나 가마니 등으로 덮어서 가려놓았고, 설혹 노출돼 있는 것들도 대나무나 무명천, 마끈 등속으로, 그다지 사람 눈길을 잡아끌 만한 재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비차의 재료들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구할 수 있는 아주 흔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바늘이나 송곳 끝처럼 잔뜩 신경을 쓰이게 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저 광녀 도원이었다. 비차 제작장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조운과 얽힌 그 헛소문이 아니더라도 여간 경계하고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될 여자였다. 무엇보다 둘님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고, 지금도 여전히 조운을 향한 원초적인 성애로 접근해오고 있는 위험한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조운이 보기에 시민은 약간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랬다. 사실 시민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그 지역에는 비봉산보다 높은 망진산도 있고, 비봉산보다 넓은 선학산도 있었다. 한데도 여기 사람들은 왜 비봉산을 이 고을의 상징적인 산으로 보는 것일까. 그곳에서 날아가 버렸다는 봉황새에 대한 미련이나 기대감 탓인지도 모르겠다.

“저 비봉산은 언제 어디서 봐도 의젓해 보이지 않소? 그대가 언젠가 본관에게 말했던 것처럼, 저 산 이름부터 본래대로 봉산으로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오.”

시민의 말에 조운이 비봉산과 저편 대룡골 사이의 못 쪽을 가리켰다.

“저 못도 가마못이 아니고 원래 이름대로 서봉지(棲鳳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 좋은 이름이었는데 없어져버렸으니…….”

조운의 심정이 한없이 막막했다. 흘러가 버린 물처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 비차는 날아가 버린 봉황새처럼 영영 붙들지 못할 새인가?

“봉황이 서식하고 있는 못이라…….”

시민의 혼잣말을 듣던 조운 머리에 가마못에 얽힌 또 다른 설화가 떠올랐다.

어떤 노인이 못 둑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저편에서 담배 연기 같은 것을 내뿜으며 커다란 구렁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노인은 봉곡리 타작마당까지 달아났지만 구렁이는 계속 따라왔고, 마침 타작하던 사람들이 도리깨로 구렁이를 때려 죽였는데 그날 밤 모두의 꿈에 구렁이가 나타나서는, 너희가 나를 죽여 황천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어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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