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 가족의 이야기보따리
섬진강 시인 김용택 가족의 이야기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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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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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노년의 조건…신간 ‘나는 참 늦복 터졌다’
신간 ‘나는 참 늦복 터졌다’(푸른숲 펴냄)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66)과 그의 아내 이은영, 그리고 시인의 모친인 박덕성 할머니가 함께 쓴 책이다.

할머니가 구술하면 며느리가 받아 적었다. 시인은 두 여인의 글을 책으로 엮어냈다. 책은 고부 관계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바느질을 시작하고 한글을 깨치며 건강과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농사꾼으로 평생을 보낸 박덕성 할머니는 몸이 아파 병원으로 옮겨진 후 온종일 창밖을 바라보며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느는 것은 아프다는 하소연, 억울하다는 한탄,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 뿐이었다.

그러던 할머니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은 며느리의 권유로 바느질하면서부터다.

“내가 왜 병원에 있냐”(74쪽), “쉽게 죽도 안 하고, 내가 언제까지 이러고 살끄나. 방법이 없다”(67쪽)던 할머니는 밥보자기를 하나 둘 만들면서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삶의 재미와 보람을 회복했다.

처음에는 초라하던 자수의 꽃잎과 줄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화려해지고 통통해진 것은 할머니의 바느질 솜씨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한 덕분이었다.

할머니는 아들과 손녀 말고 며느리에게 줄 조각보도 만들어달라는 말에 “지랄한다, 자껏. 그거 만드느라 죽지도 못하것다”(85쪽)며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심 기뻐한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선물한 또 다른 ‘할 일’은 글쓰기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할머니가 단 몇 글자라도 직접 글을 써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게 되고 며느리에게 당신의 일생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들려준다. 며느리가 그 내용을 찬찬히 받아 적는 순간 시어머니의 말과 인생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판소리가 됐다.

몇십 년을 들어온 내용이라 다 안다고 흘려들었던 지루한 옛날 사람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다시 보게 되고, 시어머니는 한 자 한 자 글을 따라 쓰는 가운데 집안의 어른으로서 품격을 갖추어갔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녹음한 다음 집에 와서 어머니 말씀 그대로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정리했다. 책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 명절에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 어머니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비로소 자식들로부터 독립이 되어 있었다. (…) 남편은 어머니가 대학원을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엘리트 어머니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공부가 인격이 된다는 것을 어머니에게서 배운다며 웃기도 했다. 그러나 그냥 웃고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몸이 아프면서 잃었던 자존감을, 바느질과 글쓰기를 하면서 회복하고 계셨다. 놀라웠다.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어머니께 잘해야 한다는 무거운 부채감에서 벗어났다.”(‘프롤로그’ 중에서)

할머니는 이런 자신의 삶을 두고 “늦복이 터졌다”고 했고, 김용택 시인은 “결혼 30년 만에 처음으로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했다.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 든 뒤에 무엇으로 기쁨을 얻을 것인가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 들어서 더 좋아지는 것,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인생 후반부도 얼마든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든 일곱의 나이에 한글을 깨치고 수를 놓으며 건강과 생기를 회복한 박덕성 할머니와 김용택 부부의 인생은 노후준비를 한답시고 돈 모으기에만 급급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돈, 건강, 친구, 배우자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연합뉴스

나는 참 늦복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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