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가꾼 과수원, 고라니에 당할 순 없어
애써 가꾼 과수원, 고라니에 당할 순 없어
  • 경남일보
  • 승인 201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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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의 귀농일지> 울타리 작업
여름에 접어든다는 입하를 지나자 오후 햇살이 뜨거워졌다.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서늘한 기운이 남아있지만 한낮 기온은 여름을 방불케 한다. 오월 햇살을 받아 산야는 하루가 다르게 푸른빛을 더해가고 싱그러운 신록을 지나 온 바람에는 풋내가 물씬 묻어있다.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오월은 일손을 기다리는 일들이 넘쳐난다.

입하절기면 논에서는 개구리 울음 소리가 높아지고 보리가 익기 시작하는 때이다.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얼마 전까지 보리가 누렇게 여물기 시작하면 곳간이 비어 연명하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묘하게 식량이 떨어지는 이맘 때 피는 이팝나무의 하얀 꽃을 보고 얼마나 입맛을 다셨으면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시골에서는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를 신목으로 여겨 치성을 드리고 피는 꽃을 보고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는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고 풍년을 점쳐 본다.

“입하 바람에 씨 나락 몰린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은 묘판을 만드는 대신 육묘장에서 묘를 키우는 바람에 이런 일은 없다. 속담처럼 일교차가 심한 때인지라 오후면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 많은 때이다.

얼마 전에 정식을 했던 고추가 자라면서 바람에 이러 저리 흔들리며 쓰러지는 포기가 많아 지지대를 사다 묶어 세웠다. 지난해에는 지지대를 잘못 구입해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고추농사까지 망칠 번했다. 고추가 어릴 때 구입하면서 길이가 50cm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사다 세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렸다. 더 높이 자라는 고추 키에 맞추기 위하여 대나무를 잘라 곳곳에 세우고 긴 끈으로 묶어야 했다. 올해는 지난해와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튼튼한 알루미늄 지지대를 구입해서 썼다.

오이와 단호박 사용할 지지대는 더 굵고 긴 것을 구입했다. 오이와 단호박은 덩굴을 벋으며 자라는 식물이라 짧은 것을 사용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지대를 타고 넘으면 소용이 없게 되다. 가능하면 높고 튼튼하게 세우고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여름 내내 돌보는데 유리하다. 잘못하여 땅을 기면서 덩굴이 자라게 되면 열린 과일을 수확하는데 애를 먹게 되고 제 때 수확을 못하고 시기를 놓쳐 버리기 일쑤다.

올해 매실묘목을 심으면서 고라니 피해를 우려했었다. 눈이 트고 어느 정도 싹이 자랄 때까지는 피해가 없었는데 얼마 전부터 고라니가 달려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밤이면 식량창고처럼 드나들며 모조리 새순을 따 먹어 치웠다. 궁여지책으로 냄새가 독한 농약을 뿌려 보기도 했지만 비가 내려 씻기면 효과가 없었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농약이 묻지 않은 새순은 용하게 먹어치웠다.

고라니를 퇴치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는 듯 했다. 할 수 없이 비용이 들고 힘은 들지만 쉽게 접근을 할 수 없도록 울타리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울타리도 낮으면 야생고라니가 쉽게 뛰어 넘을 수 있을 것 같아 가슴 높이 이상 되도록 설치했다. 다행이 밭 주변으로 수로를 파 놓아 고라니가 넘어야 하는 높이는 사람 키를 훌쩍 넘고도 남을 듯하다. 그물망으로 울타리를 치고 그물망 아래쪽으로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돌로 눌러 두었다. 노루는 몰라도 뿔이 없는 고라니는 그물에 걸리지 않고 빠져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사실 이렇게 그물망으로 울타리를 쳐도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높이의 울타리는 쉽게 뛰어넘고 노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발목이 그물망에 걸려 희생을 당하기도 했다지만 그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다만 고라니가 그물망이 장애물이 되어 쉽게 접근을 못하고 그동안 매실나무가 허리 높이까지 훌쩍 자라버리면 된다. 고라니도 고개를 쭉 빼거나 뛰어서 먹는 경우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풀 베는 일이 기다린다. 우선 급한 곳부터 아버지께서 베었다. 다음 주부터 과일 솎기를 시작할 단감 밭 풀 베는 일을 제일 먼저 마쳤다. 울타리를 친 새로 조성한 매실 밭을 제외한 다른 매실 밭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만 걷어내고 풀은 베지 말고 지켜보기로 했다. 고라니가 매실 새순을 함부로 뜯어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효과가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정찬효 시민기자

울타리설치
초보농사꾼이 고라니를 퇴치하기 이한 울타리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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