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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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4.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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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아 (한의학 박사)
착한 아들은 고민하고 있었다. 부모의 꿈인 생명공학자가 되어 할아버지 한의학의 기전을 밝혀야 하는데 자꾸 철학, 문학, 실존분석학에 이끌리고 삶의 의미를 통찰하는 문제에 깊이 빠져드는데 이래도 되나 하고. 민사고를 졸업하고 아이비리그 브라운대에 입학하여 부모에게 기쁨을 선사해준 아들은 부모가 힘들게 번 돈으로 공부하면서 부모의 기대인 과학적 실험에 매달리는 대신 실존분석이라는 학문에 매료되니 가슴속에서 갈등과 죄책감이 든단다. 현실적으로 아직 돈도, 명예도, 지위도 없는 청소년 시기, 그저 미래에 대한 가능성밖에 없는 우리 청소년 아이들. 나는 아들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착한 녀석, 늘 엄마 걱정만 하는 녀석. 엄마 쉬세요, 엄마 끼니 거르지 마세요. 그런 착한 녀석이 자신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갈망을 억누르니 괴롭고 그렇다고 전공과 다른 것을 하자니 이도 저도 아닌 게 될까봐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인 것이다.

아들아, 한때 나도 역시나 마음이 급해서 너희들이 빨리 무언가 실적을 보여주기를 조급하게 바랐다. 빠른 실적, 빠른 성과, 빠른 출세. 그러나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다. 절대로 조급하지 않는다. 너희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다. 인간에 대한 확신, 인류에 대한 확신. 나는 너를 믿는다. 전공과 다른 것을 공부해도 절대로 불안해하지도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어떤 분야에서든 깊이 있게 공부한다면 그것이 세상에서 인기 없는 것이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분야든, 그것이 돈과 명예를 안겨주지 않는 분야든 절대로 상관없다. 네가 하고 싶어 한다면 그것이 옳은 거라고 확신한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네가 간다면 나는 기다릴 거다. 네가 그 분야에 반드시 큰 업적을 쌓게 되리라고. 절대로 불안해하지 마라. 절대로 죄책감을 갖지 마라. 네가 진정으로 열정을 쏟고 싶어 한다면 그 분야가 어떤 분야든 엄마도 가장 좋다.

우리 어른들은 너무 조급해서 많은 것을 망친다. 뛰어난 인재는 예술에서, 철학에서, 과학에서, 혹은 재난방지시스템을 연구하는 일 등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가치 있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 아들아, 너는 젊다. 아무런 구속 없이 훨훨 날아올라라. 어디까지 날아오를지 모르지만 어떤 이유로도 그 날개를 옭아매지 말아라. 내 소원은 네가 맘껏 날아오르는 것, 그뿐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뿐만 아니라 우리 조국의 청소년들이 모두 다 각자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분야에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조급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총명한 아까운 인재를 전문직종에 옭아매어 그들이 높고 넓은 하늘에서 활짝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다른 찬란한 세계를 박탈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최은아 (한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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