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4.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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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의 명가, 필립스를 키운 안톤 필립스

필립스

오늘날은 필립스하면 다양한 가전제품으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1891년 네덜란드 아인트호벤(Eindhoven)에서 전기가 상용화된 이후 날로 늘어나는 전구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Philips & Co.로 출발한 회사이다. 1891년 기계를 만드는 엔지니어인 제라르트 필립스(Gerard Philips)는 아버지의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아인트호벤에 공장 건물을 사서 1년 뒤 그곳에서 탄소 필라멘트 전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두 부자가 대단한 각오로 창업을 했지만 1893년애 막대한 손실을 내며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필립스 가에는 성실한 학자 타입인 형 제라르트와 장난꾸러기 같은 동생 안톤(Anton)이 있었다. 별다른 재능도 없는데다가 공부를 싫어했던 안톤은 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런던으로 건너가 한 주식중개인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이때부터 비범한 상인으로서의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의 아버지 회사가 어려워지자 런던에서 하던 일을 접고 1895년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는 판매를 맡았고, 제라르트는 기술적 측면에 골몰했다. 공장은 괜찮게 지어져 있었지만 제품의 판매계획과 조직 등 경영관리시스템에는 문제가 많았다. 안톤은 그의 할 일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합류한 지 1년이 지나면서 회사 사정은 한결 나아지게 되었다. 형 제라르트는 신제품을 연구 개발에 진력하고 안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회사를 이끌어나갔다. 제라르트는 에디슨이 발명한 탄소필라멘트 조명 기술을 익혀 필라멘트를 탄화하는 기술을 필립스의 제품에 응용하였다. 안톤은 이런 기술을 마케팅에 교묘하게 접목시킴으로써 고객의 신뢰를 얻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진력하였다. 그는 적극적인 방문판매로 국내 영업활동이 궤도에 오르게 되자 해외로 눈을 돌려 판매량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안톤은 한 달 가운데 3분의 2 정도를 야간열차에서 보낼 정도로 열성을 다해 일하였다. 안톤의 세일즈 활동은 필립스 제품의 전체 품질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기업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소탈한 성격에다 특유의 부지런함과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매출을 신장시켜나갔다. 마침내 연간 매출의 절반을 러시아 시장에서 올리는 쾌거를 거둠으로써 독일의 지멘스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안톤의 기업가적 재능과 노력에 힘입어 필립스는 러시아 시장에서의 확고한 판매망을 구축하면서 필립스의 공장도 급격하게 확장되기 시작하여 종업원 수가 초기의 60명에서 120명으로 늘어났다. 19세기 말에 이미 필립스는 유럽에서 가장 큰 전구 생산업체가 되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면서 종업원 수가 무려 2만 명으로 늘어났다. 120여년이 지난 현재 필립스는 세계 60여 개국에 진출해 종업원 수가 12만 명을 넘어섰다. 필립스는 글로벌 시대의 리더로서 항상 최첨단 기술과 제품 개발에 앞장 서왔다. 반도체, 오디오, 디지털 CD, 비디오제품에서부터 화상기술을 활용한 의학진단과 환자의 모니터링, 최첨단 의료기구에 이르기까지 제품화 하고 있다. 그야말로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최신의 제품들을 개발하여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필립스로 성장 발전시킨 기업가 안톤 필립스의 도전 정신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젊었을 때부터 사원들의 복지향상에 관심을 기울이던 안톤 필립스는 사내 연금제도를 도입하고 보건소도 창설했다. 1932년에는 종업원의 건강관리를 위해 당시 2만 명이던 종업원 모두에게 뢴트겐 사진(X 레이)을 찍도록 했을 만큼 종업원의 산업 보건 안전 및 위생관리에 신경을 썼다. 필립스의 내실 있는 후생복지제도는 유럽의 많은 기업들로부터 주목받는 귀감이 되었었다. 그래서 그는 네덜란드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으로부터 최고의 영예의 포상과 많은 훈장, 포장, 명예박사 학위 등을 수여 받는 등 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고조에 달했다. 필립스를 네덜란드의 대표적 기업으로 성장시키기도 하였지만 네덜란드의 경영자 가운데 그만큼 일생을 영예롭게 보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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