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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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1. 오타아의 등롱
조선의 현실은 조운이 꿈꾸는 따뜻한 아궁이와는 달리 춥기만 했다.

한강에서 후퇴한 도원수 김명원은, 한응인, 이양원 등과 임진강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더덜나루’, ‘더덜매’, ‘이진매’라는 여러 이름을 가진 임진강. 상류에는 조운이 비차 바퀴 재료로 쓰려고 하는 소나무와 참나무 등의 숲이 울창한 그곳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국경으로 격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비운의 강이라고 할 만하였다.

지금 그곳에 모인 장수들 표정이 그때까지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모두 어둡고 굳었다. 승진이 너무 빠르다고 논박하는 언관(言官)들에게 선조가 이르기를, 장차 절도사를 삼을 사람이니 바꿀 수가 없다고 한 김명원. 임금이 서쪽으로 피난을 가자 상복 차림으로 전쟁에 임하기도 하는 그는, 장수인 것도 같고 정승인 것도 같다는 평을 받는다.

한응인은 유교칠신의 한 사람으로 선조에게서 영창대군 보호를 부탁받기도 한 인물로서,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고하여 관직이 더 오르기도 한다. 이양원은 명나라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이성계의 아버지가 고려의 이인임으로 잘못 기재된 것을 바로잡은 공으로 높은 벼슬을 얻었다.

김명원 부대에는 조선군 중에서 정예병으로 알려져 있는 평안도 사병들까지 동원되었다. 서북면 국경수비를 주임무로 하고, 함경도 지방의 6진제와 함께 다른 지방군과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 평안도 사병은, 무너진 조선군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

“우리가 강을 건너 역습합시다.”

“예? 방어도 어려운 이런 판에……?”

“왜적은 우리가 선제공격을 할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할 것이오. 지난번 한강에서의 치욕을 깨끗이 씻을 절호의 기회요.”

김명원의 제안에 다른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어설프게 공격하는 것보다는 수비로 나가는 게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김명원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도강 역습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왜군은 미리 알고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아군의 선봉대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 적의 유인작전에 빠졌다아!”

“더 나아가지 말고 어서 후퇴하라!”

섣부른 역습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여실히 보여준 전투였다. 방어사 신할과 조방장 유극량이 목숨을 잃었다. 도순변사 신립의 동생인 신할. 어머니가 재상 홍섬의 노비였던 유극량.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무예를 닦아 무과에 급제한 입지전적인 인물인 유극량은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어느 집안의 여종이었는데, 어려서 잘못하여 그집 옥배를 깨뜨리고 도망쳐 나와 네 아버지를 만나 너를 낳았다.”

그러자 유극량은 어머니가 노비로 있던 재상 홍섬의 집을 찾아가 죄를 진술하고 종으로 삼아줄 것을 고하니, 그 장한 태도에 감복한 홍섬이 그를 조정에까지 이끌어준 것이다. 그날 백발을 흩날리며 강을 건너가 왜군 여러 명을 죽이고 전사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본 군사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다.

궤산된 수비군 일부를 겨우 수습해 평양으로 돌아오면서 김명원은 가슴을 쳤다. 그의 심정은 날개 찢긴 나비와도 같았다. 아니, 들녘에는 나비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꽃잎들이 말발굽에 짓밟힌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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