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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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1. 오타아의 등롱
그러나 홍순언은 잠자코 고개를 저으며,

“어서 가서 장사나 치르도록 하시오.”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러자 여인은 얼른 홍순언의 옷자락을 붙들며 간곡하게 청했다.

“그러면 존함이라도…….”

“홍순언이라 하오이다.”

그게 끝이었다. 그로부터 몇 해가 흘렀다. 선조는 잘못 기록된 역사서를 바로잡기 위해 열 번이나 중국으로 보낸 사신들이 모두 실패하자 진노했다.

“이번에도 고치지 못하고 오면 살 생각을 말라.”

그러니 역관들이 다투어 서로 가지 않으려고 한 건 당연했다. 이에 당시 공금유용이란 죄목으로 옥에 갇혀 있던 홍순언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사신 황정욱을 따라 통역관으로 가게 했다. 일찍이 그의 할아버지가, ‘이 아이는 기개와 도량이 범상치 않으니 나중에 반드시 나라를 다스릴 만한 기량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던 황정욱. 그는 또한 기대승이 문하생들에게 이르기를,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학문을 강론하는 실력이 정밀하기로는 황정욱만 한 자가 없으니, 너희가 나중에 서울에 들어가 스승을 구하게 되면 바로 그 사람이다’는 말로 극찬한 인물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모두가 꺼려하였던 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예부시랑 벼슬에 있던 석성과 류씨 부인이 몸종 10여 명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다. 그러고는 보은배를 하며 홍순언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이승에서는 그 은혜를 갚지 못할 줄 알았는데…….”

“아, 그게 언젯적 일인데 아직도 잊지 않으시고…….”

그리하여 석성의 도움으로 200년간 잘못 기록된 역사를 바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명의 원군 파병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전세는 갈수록 조선에게 불리하기만 했다. 결국 선조는 윤두수를 유수대장으로 삼아, 김명원과 이원익 등을 지휘해 평양을 방어케 하고, 자신은 평양을 떠나 의주로 피신하기에 이르렀다.

윤두수는 세수하고 머리를 빗질한 후에 관대를 갖추고 하루 종일 엄연한 자세로 앉아 있어 사람들이 그의 나태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음 소식이 전해지자 사대부들은 물론 항간에서도 어진 정승이 죽었다고 슬퍼하였다.

정여립의 난을 수습한 공으로 경림군에 봉해졌던 김명원은, 몇 해 전에 왜구가 녹도를 함락하자 도순찰사가 되어 물리치기도 했으며, 원병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의 자문에 응하기도 하는 등, 유학과 병서, 궁마에 능했던 인물이다.

이조판서로서 평안도 도순찰사 직무를 띠고 선조의 피난길을 호종했던 이원익. 그는 서민적인 인품으로 문장이 뛰어났으며 오리정승(梧里政丞)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여든일곱 살까지 장수했던 까닭에 조일전쟁, 인조반정, 정묘호란 등 조선 중기 중요한 사건들을 모두 겪었던 그. 병사들이 1년에 4회 입번(入番, 당번이 되어 근무처에 들어감)하던 것을 6번으로 고쳐 근무기간을 넉 달에서 두 달로 줄였고, 또한 양잠을 확산시켜 사람들로부터 ‘이공상(李公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평양 수성군 중 고언백 등이 지휘하는 정병 400명이 능라도에서 대안의 왜진을 기습한 게 화근이었다. 능라도, 그곳이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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