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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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1. 오타아의 등롱
능수버들이 대동강 물결 위에 비단을 풀어놓은 듯이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능라도였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금수산 벼랑 위의 부벽루와 영명사, 을밀대의 경치는 얼마나 뛰어났는가. 산벚나무와 전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삼을 만하고, 남쪽 금릉동굴은 또 그 신비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바로 그런 곳에 치욕의 역사가 기록되어야 했으니.

교동향리로 근무하다가 무과에 급제하여 당시 영원군수로 있다가 대동강 방어에 나온 고언백. 그는 대동강전투에서는 패했지만 그해 9월 왜군을 산간으로 유인하여 62명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린다. 하지만 십여 년이 흐른 뒤 광해군이 임해군을 제거할 때 그의 심복이라 하여 같이 살해되는 운명이 되고 만다.

조선군은 왜군에게 패하고 대동강의 한 여물목인 왕성탄 얕은 물을 건너 돌아왔다. 그 광경을 지켜본 왜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수심이 저렇게 얕은 줄 몰랐구나.”

“당장 오늘 저녁에 저 강을 건너 성을 공격하자.”

군사 수로 보나 무기로 보나 왜군의 공성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전멸할 것 같았다. 윤두수와 김명원 등은 눈물을 머금고 명했다.

“병기를 연못에 버리고 퇴각하라!”

군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무기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조선군은 피눈물을 펑펑 내쏟았다. 지난날 시민이 사직서를 써가면서까지 병조판서에게 보수를 간언했던 군기였다.

성내 조선군이 물러난 것을 확인한 소서행장, 흑전장정, 종의지 등이 모두 입성했다. 조일전쟁 당시 왜군 제3군을 이끌고 침공한 흑전장정은, 정유재란 때에도 소서행장, 가등청정 등과 함께 조선으로 또 쳐들어오지만 실패하고 돌아간다. 풍신수길이 죽은 후에는 덕천가강에게 충성을 다하는 기회주의자이다.

그런데 소서행장은 뜻밖에도 조선 여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있었다. 그는 의아해하는 사위 종의지에게 말하였다.

“전쟁고아다.”

“그런 아이를 왜……?”

소서행장은 그 소녀의 머리를 매만지며 대답했다.

“본국으로 돌아갈 때 데리고 갈 생각이야.”

종의지는 더욱 황당해하는 눈빛으로,

“예에? 그 아이를 우리 일본으로 데리고 가신다고요?”

소서행장은 자기를 올려다보고 있는 조선 소녀의 까만 눈망울을 들여다보며 이미 결심을 굳힌 듯 그렇다고 짧게 말했다. 종의지는 장인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음만 잡수신다면 저애보다 더 성숙한 조선 처녀들도 많은데…….”

소서행장이 홀연 웃음을 터뜨렸다. 조선 소녀가 소서행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숫제 포기한 건지 아니면 부모형제를 모두 잃은 충격으로 넋이 나가버린 탓인지, 얼핏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 백치 같은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미모가 돋보이는 소녀였다.

“얼굴도 예쁘고 영리해 보이기는 합니다만…….”

종의지는 계속 말꼬리를 흐렸다. 소서행장은 기대 섞인 말투로,

“자네 눈에는 어떤가? 내가 보기에는 양반집 규수 같은데 말이야.”

“그, 글쎄요. 그보다도 누가 납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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