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2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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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2. 말티고개 나막신쟁이
그즈음 두 왕자는 마천령을 넘어 회령에서 수개월을 머물러 있었다.

높은 영(嶺)이 구름과 맞닿은 듯하다 하여 이름 붙은 마천령. 그 험한 등성이를 넘어갈 적에, 영마루의 박달나무와 신갈나무, 잎갈나무 등도 바람에 울부짖는 소리를 내었다. 그나마 조금 의연한 것은 그 약간 아래 무성하게 자라는 소나무들이었다고나 할까.

그 고개를 이판령(伊板嶺)이라고도 하는데, 이판이란 ‘소’를 뜻하는 여진어로서 그렇게 부르게 된 데에는 전설 하나가 있다.

재 밑에 사는 어떤 농부가 산 너머 마을에 송아지를 팔았다. 그런데 어미 소가 새끼를 찾아 재를 넘어갔다. 그래서 주인이 어미 소 발자국을 따라 찾아 나섰고, 사람들은 소가 처음으로 길을 낸 고개라고 하여 이판령이라 하였다는.

그 전설은 어쩌면 위험하고도 먼 길을 떠나보낸 자식들을 찾아 나서고 싶은 어머니 공빈 김씨와 순빈 김씨의 애틋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두 왕자는 그 고갯길에 무엇을 처음으로 내었다고 할 수 있을는지. 어쨌든 새로운 전설 하나가 더 만들어질 수도 있을 슬프고도 가슴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더욱 애통하게도 왕자들은 천인공노할 반역자가 그들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몰랐다. 국경인이란 자였다. 그는 전주에 살다가 죄를 지어 그곳에 유배되었다. 그후 회령부 아전이 되어 부를 쌓았으나 조정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었다. 그런 그가 숙부인 세필, 명천의 아전인 정말수 등과 함께 백성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임해군과 순화군은 순순히 나와 포박을 받으시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나온 두 왕자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나라의 녹을 먹던 자가 달려들어 결박을 하고는 어디론가 끌고 가는 것이다. 그동안 길고 힘든 도피생활에 지쳐버린 왕자들은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놈들! 대체 우리를 어떻게 할 참이냐?”

임해군이 악을 썼다. 본디 약간 포악한 성질로 알려져 있는데다가 왜군에게 쫓기는 정신적인 압박감으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는 그였다.

하지만 국경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도리어 능글능글한 웃음기까지 실실 뿌려가면서 성깔을 돋우듯 되물었다.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라고 들어보았소?”

“왜놈 장수 가토…….”

순화군이 신음하듯 말했다. 그 역시 사간원과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순화군의 군호까지 박탈당할 정도로 제멋대로 놀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날개 꺾인 독수리 형상이었다. 똑같이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는 두 사람은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 그럼 우리를 왜놈에게 넘길 셈이더란 말이냐?”

“우리가 누군 줄이나 알고 이러느냐? 후환이 두렵지 않으냐?”

하지만 국경인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매몰차게 등을 돌려세웠다. 왕자들은 가등청정의 포로가 되어 안변으로 호송되고, 국경인은 판형사제북로에 임명되어 회령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치 않았다. 조국을 배신하고 온갖 횡포를 자행하던 국경인, 그는 가등청정 퇴각 후 북평사 정문부의 격문을 받은 회령 유생 신세준과 오윤적 등에게 붙잡혀 참살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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