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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가득한 길 따라 치유의 걷기생명의 터전, 지리산 둘레길 <3>사당마을~대축마을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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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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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샘에서 출발한 섬진강이 구례를 거쳐 악양에 닿았다. 강 오른쪽 산이 형제봉기맥이고 그 옆으로 악양 무딤이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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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피열매


‘거지가 이 고을에 들면 한집에 한 끼씩만 얻어먹어도 1년을 살고도 여섯 집이 남는다’

이 말은 악양 평사리 무딤이들의 풍요로움을 대변하는 해학이다. 265만㎡에 달하는 이 축복받은 들판은 아주 오래 전 섬진강이 만들고 지리산이 지켜주었다.

기름진 땅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30여개의 마을이 환형으로 형성됐다. 강은 들을 만들고 산은 들과 사람들을 보호해주었으며 사람들은 산에 기대고 들을 부둥켜 안고 살았다.

박경리는 소설 ‘토지’ 서문에 악양들에 대한 소회를 상징적인 글로 남겼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넘볼 수 없는 호수의 수면 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다. 그 땅 서편에 골격이 굵은 지리산 한 자락이 들어와 있었다.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상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이다. 두 곳이 맞물린 형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 고난의 역정을 밟고 가는 수없는 무리. 이것이 우리 삶의 갈망이다. 그리고 진실이다./

그는 6년 전 세상을 떠났다. 5일에는 6주기 추모식이 통영에서 열리기도 했다.

지리산 둘레길은 그 애환과 질곡의 시절을 바람처럼 넘어 이 시대 힐링(치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가 와 있다.

3회차 둘레길은 서당마을 출발 후 끝닿은 곳, 악양들 30여개 마을 중 하나인 대축마을까지다.

▲서당마을∼대축마을 구간은 지리산둘레길 12코스에 해당한다. 앞선 하동호∼삼화실구간이 너무 짧고 이번 코스가 너무 길어 서당마을에서 구분했다. 13.4km에 휴식포함 5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서당마을→적량(우계)저수지→괴목마을→신촌마을→신촌재→먹점마을→먹점재→문암송→대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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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나무 아래 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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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오전 8시 10분, 서당마을. 2번국도 하동→횡천방향 적량에서 분기한 적량로지선이 서당마을을 지나간다. 신촌마을 방향 도로를 10분여 정도 오르면 왼쪽에 적량(우계)저수지다.

저수량 126만5000평방미터로 이 일대 동산리 우계리 지역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1994년 완공했다. 당시 가마소 살대밭골 쌀뱀이골 등이 물속에 잠겼다.

초록이 융단처럼 깔린 저수지 둑길은 성음이 흘러나오는 목가적인 풍경이다. 초립동이에 풀 뜯는 황소 한두 마리가 있었다면 더 운치 있을 풍경이다.

작은 바람에 물결이 이는 저수지 한켠, 목 좋은 자리에 태공이 세월을 낚고 있다. 10여 마리가 펄떡이는 물고기망을 들어보이는 강태공은 인심 후한 동네 아저씨를 닮았다. 저수지를 벗어나면 괴목마을과 과수원길, 밭이 돼버린 계단식 경작지가 이어진다. 맞은편 길 건너 가깝게 보이는 마을이 신촌이다.

오전 8시 42분, 과거 새터골로 불렸던 신촌마을. 한때 5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27호가 살고 있다. 여느 농촌처럼 산업화의 물결로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난 때문이다.

신촌은 한국전쟁 전후로 주민들의 피란처였다. 빨치산이 지리산 삼신봉 청학동 일대에 근거지를 마련하자 군·경이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에 나섰고 산기슭에 살던 묵계주민들이 이곳으로 피난왔다.

한 주민은 “당시 묵계사람들 5∼6가구가 피란을 와 정착했다”고 전했다. 지리산 자락임에도 불구하고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천혜의 촌락인 것이다. 이 때문일까. 지금도 하동소방서에서 ‘화재 없는 안전마을’로 지정해 놓고 있다. 버스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종착지이다.

둘레길은 곧바로 된비알이며 신촌재까지 계속된다.

코끝을 자극해 재채기가 날 정도로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범인은 노란 꽃술을 가진 하얀 찔레꽃. 혼자 보기가 아까운 고향의 향기다. 길은 지프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시멘트가 깔린 곳이 있는가하면 어느새 흙길이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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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닮기도 하고 바람개비를 닮기도 한 마삭줄의 신비로운 꽃.


오전 9시 23분, 주민들이 붉은 황토를 채굴한 흔적이 있는 먼당에 올라선다. 재는 아니지만 그늘에 쉼터까지 마련돼 있다. 20분을 더 걸어 신촌재에 닿는다. 산줄기 오른쪽 2km지점에 구재봉이 있고 왼쪽 500m지점이 분지봉이다.

신촌재 넘어 산허리에 수령 200년쯤 돼 보이는 서어나무 몇 그루가 정자역할을 하는 쉼터가 있다. 옛날에는 초군(樵軍)들의 쉼터였다. 서어나무 아래에 집채 만한 바위는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석이다. 위태로워 보여도 수 만년 동안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산 아래 보이는 마을이 먹점마을이지만 둘레길은 먹점마을로 바로 떨어지지 않고 오른쪽으로 꺾어 ‘하동좋은 매실농원’ 이정석이 있는 산으로 치오른다. 2001년 낸 임도는 흥룡과 미점지구를 잇는 길이다.

경상도 사람들이 음식의 재료로 즐겨 쓰는 제피열매가 싱그럽고 풋풋하다. 제피나무껍질은 독성이 있어 옛부터 시골에서 천렵에 활용했다. 제피나무가 약이 오르는 10월, 껍질을 채취해 말렸다가 이를 찧어 계곡에 풀면 몇분 후 물고기가 기절해 뒤집어지는데 이를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잡히지 않은 물고기는 운 좋은 놈.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 다시 살아간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나무타기의 달인 마삭줄이 깨끗하고 청초한 하얀 꽃을 피워 잔치를 준비한다. 꽃모양이 별처럼 바람개비처럼 생겼다. 꽃말은 하얀웃음.

오전 11시, 먹점재를 지나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미동마을방향으로 내려간다. 그 길 가운데 가슴이 확 트이는 전망이 나온다.

섬진강과 악양 평사리들 그리고 형제봉 줄기.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구례를 거쳐 이곳에 닿을 때까지 용의 몸부림인 양 꿈틀거린다. 초록의 캠버스 무딤이(무논)들은 그 강 오른쪽에 있다. 뒷편 우람한 기운의 산줄기는 지리산 영신봉에서 출발해 삼신봉을 거쳐 내달린 막내동이 성제봉(형제봉)기맥이다.

산 바로 아래는 미동마을. 둘레길은 미동마을로 떨어지지 않고 또 한번 산허리를 돌아 된비알을 치오른다. 왼 만큼 올랐다 싶으면 시멘트 길을 벗어나 왼쪽 둔덕에 올라서 숲길을 탄다. 산길 일부구간에는 활엽목이 들어차 밀림 속을 걷는 느낌이다.

낮 12시 점심 후, 1시 10분, 길은 문암정이 있는 문암송으로 이끈다. 소나무의 기이한 형태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집채 만한 바위 위에 수령 600년짜리 소나무가 성성하다. 공중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어떻게 기나긴 세월을 버티고 살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주민은 맞은편에 있는 또 다른 바위를 가리키며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문암송이 크면서 그 힘에 못이겨 갈라져 떨어진 것이다”고 했다.

문암송(文岩松)은 높이 12.5m, 둘레가 3.3m로 2008년 천연기념물 491호로 지정됐다. 시인묵객들이 소나무를 찾아와 음풍농월(吟風弄月)했던 까닭에 문암송이라고 불렀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소나무 보호를 위해 정기적으로 찾아와 관리하고 있으며 꽃가루를 채집해 유전자 혈통을 보존하고 있다.

대둔이(대축)소둔이(소축)사람들이 문암계를 조직해 매년 7월 백중에 모임을 갖는다. 하동읍 섬진강가 송림, 노전마을 십일천송, 무딤이들 부부송과 함께 하동의 4대 소나무에 속한다.

대축마을 골골에 유난히 머위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보리농사 밭농사 대신 머위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나무 아래에서 자라는 머위는 다른 지역에서 자라는 것과는 다르다. 줄기는 어른 엄지손가락보다 굵고 키도 크며 잎은 호박잎만하다. 전량 서울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오후 1시 40분, 대축마을 앞, 보를 타고 흐르는 물은 모내기철인 지금부터 가을까지 무딤이들을 적신다. 박경리님은 그 물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했다.

최창민·강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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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송(文岩松)은 높이 12.5m, 둘레가 3.3m로 2008년 천연기념물 491호로 지정됐다. 시인묵객들이 소나무를 찾아와 음풍농월(吟風弄月)했던 까닭에 문암송이라고 불렀다.

 

*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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