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기회를, 아빠에게 저녁을
엄마에게 기회를, 아빠에게 저녁을
  • 경남일보
  • 승인 2014.05.26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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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호 (진주고용노동지청장)
“아빠는 언제 집에 와?” 7살 난 딸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답했다. “너 잘 때” 그러자 아이는 울면서 다시 물었다. “그럼, 아빠는 언제 회사에 가?” 엄마는 다시 말했다. “응, 너 잘 때”

내가 전에 참석했던 간담회에서 맞벌이 가정의 한 엄마가 소개한 사례다. 아직도 ‘응, 너 잘 때’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사실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남는 건 일뿐인 게 현실이다. 일에 치이다 보니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없다. 자녀와 마주보며 다정하게 대화할 시간조차도 없다. 오순도순 행복한 가정은 ‘별에서 온 그대’만이 누릴 수 있을 뿐이다. 왜 그럴까? 해결 방법은 없을까?

얽히고설킨 노동시장에서 쾌도난마(快刀亂麻)와 같은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바퀴 자전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두바퀴 자전거’는 ‘외발 자건거’보다 더 편안하게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유에서 말이다.

우리는 남성 중심의 외벌이형 수입 구조에 의존하는 ‘외발 자전거’를 탄 사회다. 전 세계 최장의 장시간 근로라는 오명(汚名)과 함께 말이다. 2012년 기준으로 한 사람이 연간 2092시간을 일한다. OECD 평균 1705시간에 비해 무려 300시간을 훌쩍 넘게 더 일한다. 우리에게는 1년이 14개월이 되는 셈이다. 반면에 여성, 특히 출산 전후기에 있는 엄마의 경제활동 참가는 OECD 국가에 비해 크게 낮다. 지난해 2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2%로 남성보다 0.8%p 높지만, 문제는 30대부터 경제활동 참가율이 가파르게 떨어져 엠(M)자형 곡선을 그린다는 데 있다. 출산과 육아 부담으로 중간에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가 많다는 의미다.

이제 ‘두바퀴 자전거’로 바꿔 타야 한다. 엄마가 나서서 M자형 곡선에서 움푹 파인 곳을 평탄하게 만들어야 가야 한다. 여성 인력의 활용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초래하는 생산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건이라는 거시적 이유는 둘째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 아이가 함께 저녁상에 모여 웃음꽃을 피우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서다. 엄마에게 슈퍼맘이 되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다. 우선 아빠의 장시간 근로가 개선돼야 한다. 엄마의 경력단절과 아빠의 장시간 근로는 동전의 양면이다. 아빠는 장시간 근로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반면에 일자리를 찾는 엄마와 아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달픈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둘째, 기업은 엄마가 일터를 떠나지 않고 일과 가정을 함께 잘 꾸려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근무방식을 도입해서 길을 열어줘야 한다. 전부(all) 또는 전무(nothing) 방식의 하루 8시간 이상의 획일적인 전일제 근무에서 벗어나 그 중간지대를 넓게 만들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2013년 남녀고용평등 전국민 의식조사’에 의하면 조사대상 여성의 약 70%가 시간선택제 일자리에서 일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와 같은 전일제 근무 방식하에선 그 70%의 여성이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다. 인력 부족을 겪는 기업에서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앞서서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대해 인건비와 사회보험료를 지원하고, 회사 특성에 맞게 제도를 설계할 수 있도록 무료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충분히 활용하면 일과 가정 양쪽 모두 이득이 되는 ‘일가(家)양득(得)’을 이룰 수 있다. 기업도 엄마도 아빠도 아이도 모두가 웃을 수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리고 5월 25일부터 일주일간은 ‘남녀 고용평등 강조주간’이다. 내 아이가 엄마와 아빠가 함께 만든 ‘두바퀴 자전거’에 올라타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라는 노래를 맘껏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정에 돌려주자. 엄마에게 기회를, 아빠에게 저녁을.

 

권진호 (진주고용노동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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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일 2016-09-03 20:33:02
기업들은 육아를 기르는 여성에게 시간제 근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뱍옥순 2016-03-27 00:16:04
맞습니다. 정부가 기업들에게 엄마들도 하나의 자전거 바퀴가 될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 합니다

정명호 2015-09-17 19:24:10
맞벌이 가정의 고충을 알고 나니 남편으로서 가사분담을 하여야 하겠다..생든각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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