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3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30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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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2. 말티고개 나막신쟁이
나막신쟁이날과 함께 전쟁으로 인해 너나없이 그 나막신쟁이처럼 겪어야 할 저주와 고통의 가난을 떠올리고 있는 술명의 정신을 되돌린 것은, 그때 막 들려온 보묵 스님의 이런 말이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입니다. 사람에게 언제나 오르막만 있으면 살 수가 없지요. 그러니 아드님한테도…….”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저희가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아무래도…….”

“자고로 필요할 때에 성공은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할 때가 왔으니, 그 일도 성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남쪽 하늘 위로 흰 구름 몇 개가 두둥실 떠 있는 게 보였다. 술명은 저 속에 조운이가 띄워 올린 비행기구가 섞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어떤 면에서는 술명과 박씨 부부를 더 힘들게 하는 사람이 조운보다도 둘님이었다. 도원이란 그 광녀로 인해 지금 아들과 며느리 사이가 어떤 상태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하루하루가 지옥의 연속이었다. 사돈 김학노와 정씨가 딸의 마음을 돌리려고 무진 애를 쓰고, 도원의 오라버니와 어머니가 그들 부부나 조운을 보면 어쩔 줄 몰라 하지만, 광녀가 조운만 보면 광기를 나타내는 그 짓을 멈추지 않는 한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보묵 스님이 선학산을 떠받치고 있는 뒤벼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벼랑을 보십시오. 참으로 꿋꿋해 보이지 않습니까? 자랑스러운 아드님입니다. 좀 더 기다려봅시다. 반드시 이루어낼 것입니다.”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때마침 선학산 능선 쪽에서 푸른 남강을 향해 흰새 한 마리가 크게 날갯짓을 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저 새의 날개를 보십시오. 사람도 저런 날개가 달린 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일이니 그게 어디 수월한 노릇이겠습니까?”

그 순간의 보묵 스님 음성은 연지사의 종소리를 닮아 있었다. 술명은 보묵 스님의 설명을 들어가며 아내와 함께 보았던 연지사종을 잊을 수 없었다. 구름 위에 앉아 천의를 날리며 두 팔을 벌린 채 장구를 치고 있는 비천상하며, 신라 금속예술의 최고의 걸작인 그 종의 몸에 새겨져 있는 소중한 명문(銘文)들…….

청주태수 김헌창의 난과 흉년으로 말미암은 굶주림에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고, 그 고을 백성들의 평안과 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라 3대 범종 중의 하나인 연지사종. 허공에 퍼지는 그 종소리의 메아리를 타고 조운이 만든 ‘나는 수레’가 높이 날아오르는 광경을 꿈꿔온 지가 대체 몇몇 해인가?

“가정도 엉망이지만 건강도 너무 좋지 못해서…….”

술명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몸을 혹사한 조운은 비쩍 마른 대나무 같았다. 특히 그의 두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여서 차마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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