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서비스 리츠칼튼 호텔
세자르 리츠 |
1873년에는 비엔나(Vienna)에 있으면서 유럽의 각 귀족들을 자주 만나 리츠는 그들과 친교를 유지하며 이탈리아 산레모(San Remo)에 있는 조그마한 호텔 지배인으로 근무하기도 하였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호화롭고 유명한 ‘Grand Hotel Nationale’에서 10년 동안 근무하면서 더욱 유명 인사들과 친교를 맺어오다 비로소 1883년에 몬테 칼로(Monte Carlo)에 있는 그랜드 호텔에서 프랑스의 요리 왕이라 일컬어지던 그 유명한 에스코피에(Escoffier)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단골손님에게는 직접 서브에 나섰고, 에스코피어(Escoffier)로 하여금 절대 고객의 기호에 맞는 식사를 개발하도록 독려하고 있었다. 리츠가 더욱 성공하게 된 것은 에스코피어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후세 사람들의 평가이다. 말하자면 리츠가 있는 곳에 에스코피어가 있고, 에스코피어가 있는 곳에 리츠가 있게 마련이라고 할 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그야말로 바늘과 실과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리츠는 호텔업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서 평가받게 되고, 그의 상상력과 감수성은 호텔업의 새로운 효시를 이루게 된 것이다.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사귄 사교계의 귀족과 부자 등 저명인사들의 만남으로 그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일찍이 깨달아 열심히 일하였던 것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어느 식당에서는 죠세프(F. Josef)황세를 접대하기도 하였고, 특히 웨일즈(Wales) 왕자와의 만남은 그에게 더욱 용기를 주었다. 단골손님이었던 웨일즈 왕자는 어느 날 “자네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잖아. 나의 입맛에 맞는 저녁을 준비해보게”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왕자뿐만 아니라 유명한 고객의 취향에 맞는 요리를 연구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리츠가 27세 때이던 1877년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호화스러운 루체른의 l’Hotel National(1899년에는 Grand Hotel National로 바뀜)의 총지배인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리츠는 웨일즈왕자를 비롯한 다른 저명인사들에게 도움의 편지를 써 보냈다. 그들은 리츠에게 서슴지 않고 도움을 준 것은 물론 단골손님이 된 것이다. 당시의 저명인사들은 대체로 명예와 허영을 좋아하여 그랜드 호텔을 즐겨 찾았고, 리츠는 그들을 위해 시설을 더욱 호화롭게 꾸미고 맛있는 요리들을 개발하는데 과감하게 투자를 계속하였다.
세자르 리츠가 세상을 떠난 지 백년 가까이 되지만, 오늘날까지도 그의 이름이 붙은 호텔과 서비스는 고품격의 잣대가 있다. 리츠는 호텔과 식당에서 고품격의 서비스 품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대가를 지불했고, 손님들은 이제 그것을 즐기기 위해 대가를 지불한다. 리츠는 조명, 음악, 무대, 온도, 청결, 향기 등 모든 면에 주의를 기울이며 손님들을 높은 기준으로 끌어올려 고품격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의 리츠는 무엇인가 귀족, 사치, 풍부, 고가의 식사 등의 인상으로 알려지면서 영어의 ‘화려한, 고급스러운’의 의미인 Ritzy란 신생어를 낳게 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세자르 리츠는 호텔 서비스를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귀재임에 틀림없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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