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감기와 세월호
봄 감기와 세월호
  • 경남일보
  • 승인 2014.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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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소설가)
어느덧 봄이 가고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봄 내 푸르러지던 기운이 더 한층 짙어져 녹음을 이룬다. 계절의 변화는 시각적(視覺的)으로나 촉각적(觸覺的)으로나 확연한 다름으로 전해져온다. 바람 서늘해지고 산야가 노랗게 물들면 여름이 지나 가을이고, 차가운 기운이 목덜미를 파고들어 몸을 움츠리고 몇 장 남은 나뭇잎마저 떨어지고 눈발 날리면 겨울이고, 따사로운 볕이 살갗을 만져주고 푸른 기운이 올라오면 봄이다. 네 계절의 변화 중 봄에서 여름으로의 변화가 좀 덜 뚜렷한 것 같다. 지구 온난화로 봄이 짧아져 일찍부터 여름이 시작되는 탓도 있겠지만 시각적으로도 푸르러 가는 진행상태가 계속 이어져 가는 때문일 것이다.

그런 계절의 변화를 겪을 때마다 자연이나 사람들은 몸살을 앓게 된다. 가을이면 나뭇잎이 엽록소 분해 작용으로 색깔 변화를 하는 것도, 봄이면 새순이 나오느라 잎눈이 터지는 것도 바로 몸살을 앓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외 없이 이번의 봄을 보내면서도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아프고 나면 큰다는 말도 있듯이 아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아픈 게 꽃눈 터지는 것과 같겠지만 나이 들어 아픈 것은 가을 찬바람에 나뭇잎 떨구는 것과 같다. 예전에 어른들이 나이 드니 아픈 곳이 많다는 말을 하면 그저 흘려듣고 말았는데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몸으로 느낀다.

그 감기몸살을 이기지 못하고 앓아눕자 며느리가 무엇이가를 싸들고 와 분주히 움직였다. 애쓰지 말라 해도 손을 쉬지 않는 모습이 괜히 번거롭게만 해주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면서도 참 예쁘게 보인다. 며느리가 돌아간 다음에 보니 집안이 말끔해지고, 몽롱한 기운인 채 냉장고를 여니 제 손으로 만들어다 넣어 놓은 찬기(饌器)들이 가지런하고 그 옆에는 보약도 보였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 보약보다도 정작의 그 정성 담긴 예쁜 마음을 먹고 기운을 내보자 싶어졌다.

이제 떠나는 대로 보내야 하는 이 봄에 우리는 너무나도 아팠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그것이다. 아직도 다 수습되지 않고, 얼마가 지나야 정리될지 모르지만 부도덕한 기업이, 물욕에 눈이 멀어버린 기업인이 이 국가와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를 우리는 여실히 보게 되었다. 한 사회가 영위되다보면 크고 작은 일들로 감기몸살을 앓게 되고, 그로 인한 어떤 변화도 겪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건은 감기몸살 정도가 아니라 악성 종양이고, 그것이 터지면서 한 사회를 어처구니없게 휘저어버렸다. 이 세월호 참사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서 좀처럼 잊히지도 않을 것이지만, 냉장고 속의 보약처럼 각자 나름의 치유책을 강구하여 충격에서 벗어나야 하되 너무나도 안타까운 희생을 기억하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

더 한층 푸르러 오는 여름. 지난 봄의 아픔을 그대로 껴안고 새로 다가오는 계절을 맞이한다.

전미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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