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너머 우는 파랑새
무지개 너머 우는 파랑새
  • 경남일보
  • 승인 2014.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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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함양소방서장)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전만 하더라도 5월은 우리나라의 축제와도 같은 바쁘고 아름답고 황홀한 달이었다. 그런데 올 5월의 거리는 너무 침잠하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행복이 사라지고 엄마·아빠의 얼굴에는 불안과 걱정의 표정이 역력하다. 세월호 참사로 생명을 잃은 단원고 학생들의 아픔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온 국민의 가슴에 멍에로 남아버린 탓이다. 거리와 광장에는 붉은 카네이션 대신 그들을 잊지 못해 추모하는 노란리본만 가득하다. 어린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침묵시위를 벌이는 엄마·아빠들을 지켜보면 국가의 재난안전과 구조를 책임지는 119소방공무원으로서 진심으로 통한(痛恨)의 마음을 감출 수 없다.

2001년 9·11 테러로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지는 화재현장에서 343명의 소방관들이 순직했지만 미국의 시민들은 국가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미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테러의 공포와 참사의 트라우마(trauma)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세월호 참사현장에서 해양재난과 구조를 책임지고 있는 해양경찰이 침몰하는 세월호 내부로 신속하게 구조대원들을 진입시켜 단원고 아이들을 구해냈다면(설사 전부를 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가 대한민국 해양경찰을 향해 찬사의 갈채를 보내고 가슴 뭉클한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정상의 재난관리시스템을 정상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 9·11 테러에서 무너지는 세계무역센터로 진입하는 미국 소방관을 정상이라고 하면, 4·16 세월호 침몰 중 지켜만 보고 있던 우리 해양재난시스템은 분명 비정상임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2013년 8월 6일 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살펴보면 해당 관할구역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을 총괄·조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기 위해 시·도지사는 시·도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시장·군수·구청장은 시·군·구 지역 재난안전대책본부를 둘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시·군·구 대책본부장은 부단체장이 되며 재난현장 통합지휘소를 설치·운영하게 해 일선 소방서장이 설치·운영하는 긴급구조통제단의 현장지휘소와 이원적 구조를 취하게 만들어버렸다.

결과적으로 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내용으로 시·도 긴급구조통제단장인 소방본부장과 시·군·구 긴급구조통제단장인 소방서장의 통합지휘권을 크게 약화시키거나 무력화시켜 버린 것이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재난사고 현장에서 시·도 혹은 시·군의 부단체장이 통합지휘소를 설치·운영하게 되면 경찰·군부대 등 여러 구조기관에서 법적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재난전문기관인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의 통합지휘를 받을 기관은 한 명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다양한 구조기관들을 모아놓고 통합지휘를 누가 할 것인가는 가장 먼저 중요하지는 않다. 긴박한 재난현장에서 누가 먼저 진입해 위험에 빠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구조해 내느냐가 최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평상시 잘 훈련된 구조팀이 즉시 출동해 신속하게 현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조직을 육성해야만 한다. 개정된 재난관련 법체계에서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재난사고 현장에서 시·군 부단체장이 운영하는 통합지휘소가 현장지휘관이 되어 소방서장의 119구조대원들에 대한 현장지휘권을 무력화시켜 119구조대원들이 촌각을 다투는 현장 진입이 늦어지는 일이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소망은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 국가안전처는 반드시 구조조직을 전문 재난기관과 구조대원에게 맡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재난안전에 관한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고 국가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 우리 엄마와 아빠들에게 가슴에 단 노란리본을 내리고 무지개 너머 우는 파랑새를 보여주고 싶다.
김용식 (함양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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