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정신세계의 통섭과 21세기(Ⅰ)
물질과 정신세계의 통섭과 21세기(Ⅰ)
  • 경남일보
  • 승인 2014.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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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독일의 철학자 헤겔(Wolfgang Fridriche Hegel)이 설명했듯이, 밭을 가는 농부이든, 낚시대를 만드는 장인이든 물품생산의 전과정을 알고 있었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철학이 가능했고, 그에 따라 행복을 꿈꿀 수 있었다. 이런 전인적 인간상이 산업시대를 거치면서 파괴되었다. 분업과 함께, 종합적이었던 정신과 육체, 욕구와 의미가 서로 분열된 것이다. 인간정신의 굵직한 영역으로서 이성, 감성, 실천의 조직세계를 그려 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종합적 인간의 정신은 파괴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13~14세기 이래, 철학과 문학, 수학 및 논리학, 종교학으로부터 출발했던 대학의 학문은 지속적으로 전공을 세분화시켜 왔으며 19세기 말, 산업시대에는 아예 동일전공 내부에서도 세부전공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문학으로부터 언어별 세부전공이 만들어졌으며, 20세기 들어 심리학도 사회심리학, 임상심리학, 조직심리학, 노동심리학, 산업심리학 등 세부적으로 갈라졌고, 여타 인문학 또한 세부적인 전공으로 갈려 전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학술적 기예의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

20세기의 대학은 전공 상호간의 연결고리를 아예 잘라내는 일에만 집중했다. 산업개발과 성장의 신화에 ?Z메인 각국의 자본주의 경제는 이전부터 지속되었던 분업의 마인드를 더욱 강화하여 대학으로 하여금 전공일치의 마인드를 선호하게 했고, 기술적 분야의 세부사항에 익숙한 사람을 전문가로서 취급하기 시작했다. 과학(Sciences)의 용어는 오로지 기술적인 분야에만 적용하도록 유도했고 나머지는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취급하도록 했다. 학제간의 대화는 이처럼 단절되어 갔다. 특히 한국과 같이 산업이 급성장한 국가의 경우, 각 학문이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유기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인간정신의 조직상태를 존중하지 못하고, 분업적 경제와 사회를 살아 나가는 데에만 필요한 수준으로 학문의 전공을 격하시켜 버렸다. 그 결과, 대학은 직업훈련소 수준으로 변화되었다. 직업적 유연성에 따라 대학의 전공이 구성되고 교양과목은 단지 전인적 전통이 깨어져 버린 인문학의 세부과목으로 충당되었다. 비교언어학적 특성도 익히지 않은 이가 영어학 교수가 되거나, 심리학이나 수학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가 경제학 교수를 하는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전인적 인간상은 커녕, 전문가적 능력마저도 확보하지 못한 이들이 기예적인 지식만 가지고 전문가 행세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인적 인간형은 이와 같이 대학에서 조차 부수어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대학 바깥의 산업세계는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었다. 물품생산보다는 유통관리에 집중하는 3차 산업이 급격하게 강화되었다. 농공업 상품은 유통망에 의해 장악되었다. 시장은 점점 세계화로 치닫고 있었고, 인적교류가 이민이나 관광의 형태로 활성화되었다. 정보기술은 이미 온라인의 홍수를 이루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간 정치장벽이 제거되었다. 공산주의 소련이 붕괴했으며 중국의 장막이 걷혔다.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고, 시장과 인간, 물품과 정보는 기존의 전공형 인간의 한계를 무너뜨렸다. 즉, 힘들게 쌓아 놓았던 기술문명의 세부전공 영역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산업시대라면 전공형 인간들만의 영역이었던 비밀들이 홍수처럼 ?P아져 나왔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전기기술자가 될 수 있으며,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으며, 누구나 경영관리 기법을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외국어 습득도 마찬가지이고 인적교류도 마찬가지이다. 백인과 황인과 흑인이 뒤섞여 문화를 소통하고 결혼하여 가족을 구성하는 일이 흔하다 못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20세기 후반 통섭의 논리가 탄생한 배경이다.
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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