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양수 (경남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국장)
선생님은 오래전에 치매에 걸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에 찾지 않고 있다가 수소문해서 그리 멀지 않은 요양병원에 계시는 것을 알고 다녀왔다. 참 배은망덕한 제자임에 틀림없다. 돌이켜보니 선생님 문하생으로 들어간 지가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니까 햇수로 40여 년이 훨씬 넘었다.
늘 선생님의 연구실 책상 앞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강조하신 4대 정신인 ‘참되기를 힘쓰고 진실되기를 힘쓰자’라는 무실(務實), ‘행하기를 힘쓰자’라는 역행(力行), ‘나라에 충성하고 신의를 지키자’라는 충의(忠義), ‘옳은 일을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돌진하며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참고 견디는 자세를 기르자’라는 용감(勇敢)과 애민(愛民), 애족(愛族), 애국(愛國) 등 도산 사상 글귀가 쓰여져 있었고 이를 실천하셨으며 ‘흥사단’ 학생 서클을 이끌어 주셨던 분이다.
선생님은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셨고 손수 돈을 벌어 형설의 공을 쌓아 생활 속에는 성실, 근면, 절약정신이 배어 있었고, 학문을 탐구하는 일에는 집념이 참 대단했던 분이셨다. 필자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진주로 열차통학을 했는데 그때는 다들 어려운 시절이라 차비가 싼 열차로 대부분의 시골 학생들은 통학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십오 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시골의 역까지 와서 열차를 타고 1시간 걸리는 진주로 어렵게 공부하려 다니는 제자가 안타까워 선생님 댁 사랑채 방을 내어주셨고 사모님께서도 자식처럼 사랑해 주셨다.
손을 잡고 한참을 말을 걸었더니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시는 것 같아 평소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과 학창시절 내게 가르쳐 주셨던 지혜와 용기,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삶의 철학이 회상되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간호사 선생님이 자리를 비켜 주시는 바람에 이런저런 얘기를 독백처럼 말하고 실컷 울었다. 학창시절 사모님은 나에게 여린 마음과 너무 강직하신 선생님을 닮지 말라고 하셨지만 가끔 선생님을 닮은 나의 모습을 볼 때가 많다.
선생님께 큰절을 하고 간호사 선생님께는 오래오래 선생님을 뵐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라고 부탁드리고 요양병원을 나서는데 석양의 햇살이 눈에 들어와 또 눈물이 났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강양수 (경남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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