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화해의 손을 맞잡자
이제 화해의 손을 맞잡자
  • 경남일보
  • 승인 2014.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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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 (객원논설위원)
젊었을 때 산속에 들어가 공부한지 몇 해가 지나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이백이 이제는 세상에 나가 자신이 아는 바를 펼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산에서 내려오다가 냇가에서 숫돌에 쇠절구공이를 갈고 있는 한 노파를 만났다. 이백은 무엇에 쓰려고 쇠절구공이를 가느냐고 물었다. 노파는 바늘을 만드는 중이라고 하였다. 이백은 크게 깨닫고 산으로 되돌아가 중단한 공부를 계속하였다. 마철저(磨鐵杵)의 고사다. 이백은 시·서·제자백가는 물론 모든 전통 학문을 깊이 공부하고 시문학에 있어서도 한·위·육조의 시를 터득하여 이들을 뛰어넘었다.

당나라 이후 천하에 풍미한 중국 불교의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이 선(禪)이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한 선종의 5조 홍인 조사가 법을 물려주고자 깨달은 제자를 찾았다. 수제자 이신수가 글을 지었는데 ‘몸은 보리의 나무요/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는 시였다. 이를 본 홍인은 ‘네가 지은 이 게송은 소견은 당도하였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였다’고 타이르고, 스물네 살의 젊은 혜능을 후계자로 택했다.

무애 양주동은 열여덟 살 때 중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기하 시간에 ‘정리란 증명을 요하는 진리’라는 문제에 직면한 무애는 ‘대정각은 상등(=맞꼭지각은 서로 같다)’하다는 문제를 들고 선생님에게 진리를 증명하겠다면서 “두 막대기의 가운데 점을 가위 모양으로 고정해 놓고 벌렸다 닫았다 하면 아래 위의 각이 같을 것이지 무슨 다른 증명이 필요하냐”고 대들었다. 선생님은 “그것은 비유이지 증명이 아니다”라면서 칠판 위에 두 직선을 교차하게 그어놓고 대정각의 같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였다.

무리들이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에게 도가 있습니까?” 도척이 대답하기를 “어디 간들 도가 없겠는가? 대체로 방안에 감추어 둔 것이 어떤 물건인지 미루어 아는 것은 성이고, 앞장서 들어가는 것은 용이며,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은 의이고, 가부를 아는 것은 지이며, 고르게 나누는 것은 인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못하고서는 큰 도둑이 된 자는 천하에 없다.”

이로 미뤄 볼 때 착한 사람이라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세상에 살 수가 없고, 도둑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천하에 착한 사람은 적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많으니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은 적고 해롭게 하는 일은 많다.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며 궤짝을 여는 좀도둑을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줄이나 끈으로 묶고 빗장을 걸거나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 둔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지혜다. 그러나 큰 도둑은 궤짝은 지고, 상자는 들고, 주머니는 메고 달아나면서 오직 줄과 끈, 빗장과 자물쇠가 튼튼하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자란 큰 도둑을 위해 물건을 쌓아 놓은 사람이다.’ 장자 거협편에 쓰인 내용이다.

상자를 여는 것이 거협이다. 성인이 정해 놓은 인의예악의 규범은 좀도둑은 막을지 몰라도 잠가 놓은 상자를 송두리째 들고 가는 큰 도둑에게는 도리어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사회에는 큰 악당들이 갖은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위선을 행한다.

절구 공이로 바늘을 만들겠다는 노파를 보고서야 이백은 자만을 깨닫고 다시 공부에 몰두해 마침내 시선이 됐다. 대정각의 정리에서 충격을 받은 무애는 ‘동양적 교양과 낡은 사고방식이 흙담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고 적고 있다. 글을 쓴다면서 나는 아직 문고리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장자에 따르면 악당들도 성리학적 양심을 끌어다 활용하고 있다. 평형수를 쏟아내고 화물을 실은 세월호 당사자들도 인의예악을 거론했을 것이다. 세상은 바야흐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제 그토록 격렬했던 지방선거도 끝났다. 싸움에서 응어리졌던 감정은 개울물에 흘려 보내고 우리의 터전에서 다시 화목을 다지자.
박동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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