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0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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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1. 비밀의 산행
조운이 옆에서 들어봐도 이해되지 않는 어머니였다. 아버지 말씀처럼 조운, 천운, 지운, 이렇게 아들 삼형제가 아닌가. 그런데도 하나 있는 아들자식이라니?

“하여튼 저는 그래요.”

“사람이 우길 게 따로 있지, 무슨 억지소릴……?”

조운은 어머니의 그 말뜻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날, 혼자 뒤꼍에 숨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어머니만의 전용어라고나 할까, 내 자식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귀하고 소중하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하나 있는 아들자식’이었던 것이다.

조운은 부모님과 동생들의 무탈과 함께 상돌과 백정 처녀의 앞날도 순탄하기를 빌었다. 세 사람 모두 걸음이 아주 빠른 편이었다. 남강 줄기와 산맥을 따라 거슬러 오르는 길이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에 비하면 제법 멀리까지 가 있었다. 도중에 길가 풀밭에 앉아 백정 처녀가 정성스레 준비해 온 음식으로 점심을 떼웠다. 그리고 목이 마르면 두 손으로 바가지를 만들어 계곡물을 떠 마시기도 했다. 아직은 왜적에게 더럽힘을 당하지 않은 물이 투명하고 맑았다. 비차에 새로 매단 깨끗한 무명천과 위쪽에 붙인 고운 화선지가 조운의 눈에 어른거렸다. 깊은 산속을 지나갈 때는 멧돼지와 곰이 내는 소리도 들었다. 그럴 때면 상돌은 약간 뒤로 처져 백정 처녀 옆에 서서 걷기도 하였다.

‘상돌이가 저 처녀를 무척 사랑하는구나!’

조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에 대해 일말의 의문과 회의가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도대체 굳이 그 먼 곳까지 가서 그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모든 건 마음에 달려 있다고 믿는 조운이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면이 있을 거라고, 상돌을 이해하려고 했다. 심지 깊은 그였다. 더욱이 그 처녀도 이렇게 따라나선 차에 제삼자인 자기가 제멋대로 판단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이윽고 산 그림자도 지친 듯 길게 늘어나 보일 때쯤이었다. 마침내 상돌이 손으로 오른쪽 야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깁니다, 형님. 조운은 얼른 상돌의 손가락 끝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드디어 다 왔구나. 하지만 다음 순간, 조운은 크나큰 실망감이랄까 어쩐지 속았다는 느낌부터 들었다.

‘너무 평범한 산이잖아? 다른 산보다 크고 높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세가 특별히 수려한 것도 아니고…….’

조운 눈에는 그 산이 비봉산이나 선학산, 망진산에 비해 더 나아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곳까지 왔는지 아무래도 모르겠다. 조운이 그런 의문에 싸여 있는데 상돌은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그 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더욱 상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순간부터 그는 같이 온 조운이나 백정 처녀는 마음에도 없는 듯 제 혼자서만 마른 풀숲을 헤치며 산을 탄다는 사실이었다.

조운은 백정 처녀더러 어서 따라가자는 눈짓을 해보였다. 백정 처녀도 돌변한 상돌 모습에 적잖게 당황하는 빛이었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상돌 뒤를 쫓았다. 조운도 상돌을 놓칠세라 바짝 따라붙었다. 그때부터 이상한 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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