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지게
아버지의 지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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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수 (경남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국장)
선친의 분신처럼 몸에 붙어 있었던 아버지의 지게를 20년 만에 꺼냈다. 처마 밑 깊숙이 어머님이 넣어 두셨기에 평소에는 쓸 일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지게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어 빗자루로 털어내고 짚으로 만든 멜빵끈은 부스러지지 않게 물에 적셨다. 쇠로 된 부분은 녹이 새빨갛게 슬어 있었지만 사용하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어머님의 건강이 좋지 못해 농사일을 못하시는 몇 해 전부터 필자가 밭농사를 짓기 위해서다.

약 660㎡(200평) 밭과 밭둑에는 백화점식으로 단감, 대봉감, 오디, 자두, 매실, 배, 살구, 복숭, 아로니아나무 몇 그루와 고구마, 참깨, 들깨, 고추, 가지, 개똥쑥, 토마토, 도라지가 심겨져 있고 수확을 끝낸 총각무, 열무, 쪽파를 심었던 자리에는 콩을 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밭은 경사가 좀 있어 괭이로 밭을 갈고 퇴비를 나르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아 지난해 중고 관리기를 한대 구입했으나 몇 번 사용해 보니 어렵고 위험해서 필요한 지인에게 주고 올해는 괭이로 밭이랑을 지었다.

유기질 퇴비를 구입해서 밭머리까지 어깨에 메고 몇 번을 오르기가 힘이 들어 퇴비 2포대씩 지게에 담아 밭머리를 오르내리는데 어찌나 힘이 들던지…. 평생 지게와 생활한 아버지가 얼마나 힘이 드셨는지를 이제야 느끼게 되었으니 참 불효자임에 틀림없다. 선친의 지게에는 주로 보리단, 볏단과 땔감 나무와 소에게 먹일 풀과 자식들 학비 마련을 위해 시장에 내다 팔 곡식, 가족들에게 나눠 줄 쌀이랑 참깨, 콩 등이 얹혀 어깨를 늘 무겁게 했다. 특히 선친은 17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장으로서 집안일을 도맡았고 23살 때 결혼해 6·25전쟁 때 홀어머니와 갓 시집온 아내를 두고 군대에 입대했다고 한다.

필자가 어릴 때 선친으로부터 들은 전쟁 얘기는 정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삶과 죽음의 연속이었다. 점심을 같이 먹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숨지는 전우, 수색을 하다 몰살 당할 뻔했던 얘기 등등. 간혹 TV에서 북한을 옹호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바로 응징해야 한다고.

필자의 시골 면내에는 선친의 동갑내기가 몇 분 안 계셨다. 대부분 6·25전쟁에 나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지금도 양력 6월이 오면 생전 선친의 전쟁 얘기와 무거운 지게를 내려놓던 순간까지도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사무치게 그립다.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지켜주신 우리 아버지 세대 전쟁의 영웅들을 되새겨보고 오늘날 우리는 국가와 그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하겠다. 아버지의 지게 덕분에 필자의 6남매는 부자는 아니라도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강양수 (경남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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