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상생하는 피서법
자연과 함께 상생하는 피서법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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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창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자원연구소 자문위원·농학박사)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김영랑의 ‘5월’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와 마찬가지로 5월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작품에서는 대부분 5월을 신록의 계절 또는 계절의 여왕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5월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 같다. 바로 이른 무더위 때문이다.

올해는 5월에 우리나라 기후값을 산출하는 전국 45개 대표지역에서 폭염특보 발령 기준이 되는 최고기온 33도를 넘은 날 수가 전국 기상관측망이 완성된 1973년 이후 가장 많았다. 특히 지난달 31일 대구의 수은주가 37.4도까지 치솟아 1907년 대구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5월 기온으로는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수원·춘천 등 19개 지역에서도 각 지역별로 5월 최고기온 기록을 새로 썼다. 이제는 ‘5월에 피서라도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피서(避暑)’라는 단어는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요즘 피서라고 하면 계곡이나 바다, 또는 에어컨이 추울 정도로 나오는 카페 등이 떠오른다. 반면 옛날 우리 선조들은 좀 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피서법을 선택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자신만의 피서법을 소개했다. 이 피서법으로는 깨끗한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소나무 단에서 활쏘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뛰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동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달 밝은 밤 발 씻기 등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의 ‘죽붕기(竹棚記)’에는 월송정 숲 속에 높은 다락을 만들었으며, 숲의 소나무를 기둥으로 이용하고 대나무로 바닥과 난간을 만들어 식사와 잠자리를 날마다 여기서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는 언제나 솔바람이 서늘하게 불고 그 시원한 기운이 뼛속에 스며들어 아무리 드센 더위도 기승을 부리지 못하고, 모기와 파리 따위도 감히 근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 소개된 피서법의 공통점은 우리 선조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피서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더운 여름에 오히려 활을 쏘거나 투호놀이를 하는 등 몸을 많이 움직이는 운동을 통해 더위를 났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권장되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더위를 짜증이나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겪는 과정의 하나로 여기는 태도가 나타난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연에 동화되는 방법으로 순리에 따라 무더위를 이겨 낸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마음먹고 발품을 팔아야 조금이나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피서법이 정말 부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기 위해 금년부터 산림청에서는 ‘숲체험 힐링 프로그램(4∼11월)’과 ‘아토피 가족 힐링캠프(6∼11월)’ 등 숲속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숲 체험 힐링 프로그램’은 가족, 친구, 연인이 풀코스로 숲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자의 연령과 탐방로 코스에 따라 ‘소릿길 따라 숲속 여행’ 등 여러 가지 코스별로 자연명상·현장체험 활동 등을 통해 자연휴양과 더불어 도심 속 생활에 지친 탐방객에게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아토피 가족 힐링캠프’는 아토피를 앓는 환우들의 가족구성원이 모두 참여해 천연유기농 식단으로 식사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가족애를 돈독하게 하는 것은 물론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아토피 발병의 원인, 예방법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고 한다.

봄의 끝자락에 찾아왔던 무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7∼8월에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와 피서행렬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위를 피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아 자연과 함께 어울려 그 순리에 따라 무더위를 이겨내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산림청에서 이를 도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한다고 하니 이제는 우리들도 자연을 파괴하는 피서법에서 탈피해 자연과 상생하는 피서법을 즐기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박남창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자원연구소 자문위원·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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