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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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 싸울아비들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그냥 허위허위 산만 타는 광경만 펼쳐졌다. 그 야산은 밑에서 올려다보았을 때와는 달리 제법 험하고 가팔랐다. 근처에는 인가(人家)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길이 없었다. 상돌이 새로 길을 내면서 오르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산을 탔을까. 이윽고 상돌이 걸음을 멈추었다. 백정 처녀와 조운도 덩달아 섰다. 세 사람이 내는 가쁜 숨소리가 적요한 산을 울렸다. 지금까지 거쳐온 다른 곳처럼 잡목들이 우거진 지점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햇살이 좀 더 잘 비치고 바위가 조금 드물다는 것일 게다. 팔부능선쯤 올라온 것 같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서편 저 아래로 남강 상류라고 생각되는 강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고, 강 건너에는 가없이 잇닿은 산맥들이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상돌은 아직도 조운과 백정 처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듯했다. 지금 그의 심정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고 착잡하다는 것을 조운은 알았다. 그들이 올라와 있는 그 산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가 보였던 반응이었다. 이윽고 상돌이 조운을 한 번 보고 나서 백정 처녀에게 말했다. 자, 이쪽으로 오시오.

백정 처녀는 얼른 상돌이 말하는 쪽으로 갔다. 그 자리는 다른 곳보다 약간 넓게 팬 곳이었는데, 조운이 자세히 보니 그 근방이 도드라져 있어 상대적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같이 비쳤다. 상돌이 백정 처녀와 나란히 서며 조운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저희 두 사람 혼례를 올리려 하니 증인이 돼 주십시오.”

“그, 그러지 뭐.”

조운은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리는 말투가 되었다. 거기 오기 전에 대략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그 일에 부닥치니 당황스럽고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겠다.

“형님께서 따로 하실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상돌이 조운에게 그렇게 말한 후 백정 처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그녀도 얼른 상돌을 따라했다.

‘아, 신랑신부가 맞절을 하는 거구나! 아무리 양가 부모가 없고 천한 백정들이라고 해도 저걸로 혼례를 대신하다니.’

조운은 눈물이 쏟아져 내리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제 둥지에 깃들인 것일까. 어디선가 초록 냄새가 묻어나는 듯한 산새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혼례를 치르고 있는 신랑신부에게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았다.

조운은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에 그 장면을 똑똑히 담아두고 싶었다. 상돌 얘기처럼 그는 그 혼례의 유일한 증인이었다. 나중에 그들 사이에 자식이 태어나면 친조카처럼 대할 것이다. 조운은 주례를 서는 사람같이 말했다.

“그러면 신랑신부가 같이 술을 마시도록 하시오.”

상돌과 백정 처녀는 술잔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똑같이 그것을 마시는 동작까지 취했다. 산바람이 신랑신부의 몸을 피해가며 불고 있는 듯했다. 상돌의 부모 묘지가 혼례 치르는 그 자리 가까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그 야산 위로 별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전쟁도 그곳만은 비켜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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