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아래 코’
‘입 아래 코’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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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 국제대학교 교수)
지방선거가 끝나고 난 후 일부 언론의 보도나 토론들을 보면 나가도 너무 나간다.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앞을 다투어 가며 누가 대권 잠룡으로 떠올랐다느니 분잡을 떠느라 바쁘다. 물론 우리들이야 언론의 입으로 세상사를 알아듣지만 아무래도 일의 순서도 모르는 ‘입 아래 코’나 마찬가지라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런 언론의 말들이 걱정되는 것은 일의 순서가 바뀐 줄도 모르고 날 뛰다가 어떤 일이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지 놓칠까봐해서이다.



코 아래 입이 있다

그렇다. 언론들이 지방선거 즉시 쏟아내는 대권후보 분석들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는 헤프고 수다스러운 가벼운 입놀림에 불과하다. 그들의 입놀림은 결코 옳지도 지금 시기에 맞지도 않다. 막 끝난 지방선거는 지방자치를 이끌어 갈 시·도지사를 뽑은 선거였지 대권후보를 뽑은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에 언론이 할 일은 당선된 시·도지사가 과연 선거공약대로 실천해 나갈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가지고 있는지 따져 보는 일부터 해야 한다.

향후에도 지역 주민들을 위해 당선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얼마나 일을 잘해 나가는지 지속적으로 평가하는 일도 해야 한다. 언론의 책무는 날카로운 평가로 다음 대선에 나설 옳은 일꾼이 누구인지 올바른 판단 근거를 제공하는 일이다. 언론이 나서서 ‘황색 언론’ 수준의 충청 대망론이니, 영남 패권론이니, 호남 대안론이니 내세워 가며 누가 차기 대선에 떠오르는 잠룡이니, 대권주자니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코 아래 입이 있는지 모르는가.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말이다. 지금 언론이 관심 가져야 할 일은 3년 후에나 있을 대권후보를 찾는 일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에 우리는 너무나 시급하기도 하고 중대한 일을 겪었던 것을 잊었는가. 정말 우리는 시급할 때를 지나고 나면 그때 중차대했던 일을 잊어버리고 말아야 하는가. 얼마 전만 해도 시급을 다투는 ‘세월호 참사’로 얼마나 많이 놀랐고 속상해했던가.

일에는 시급하기도 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 집에 불이 났다면 당장 불 끄는 일이 시급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일은 다시는 불이 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이다. 다음에는 불이 나지 않도록 가스점검도 하고, 소화기 준비도 해가며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면밀한 예방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일은 다시 세월호 사건으로 돌아가 철저히 원인을 찾아내 안정한 나라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언론이 해야 할 시급한 일은 당연히 세월호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이른바 ‘해피아’와의 연결고리를 날카롭게 해부해가며 여론을 주도하는 일이다. 그 일은 다음에 과연 정치권이 ‘관피아’나 ‘정피아’로까지 이어지는 오래 묵은 폐단들을 해결하고자 실행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실천과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물론 대권후보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언론의 자유이고 권리이다. 하지만 대권 후보들의 자질을 살피는 일부터 하고 난 다음 3년 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진짜 잠룡들이 누구인지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을 잊고서야

비좁은 마음과 열린 입은 붙어 다닌다는 말이 있다. 채근담에서 ‘입은 마음의 문이니 입을 엄밀히 지키지 않으면 진정한 기운이 모두 새 나가고, 뜻은 마음의 발이니 뜻을 엄중히 세우지 않으면 바르지 못한 길로 가게 된다’고 했다. 참으로 입은 마음의 문이다. 멋대로 지껄여대는 헤프고 수다스러운 입은 마음의 참다운 기운을 빼앗아 어떤 일이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지 헷갈리게 한다. 우리들의 입은 선거 전날만 해도 ‘모든 것을 확 바꾸어 놓을 테니 한 표만 달라’고 호소한 선량들의 입들이 ‘그때 마음’ 그대로인지 살펴보는 일부터 할 일이다. 일부 언론이 하는 ‘잠룡 운운’ 수준의 이야기는 상황파악이 전혀 안되어 충분한 사고와 지식이 없는 실언들이다. 그래서 ‘입 아래 코’이다.
고원규 (객원논설위원, 국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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