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4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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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2. 싸울아비들
진해와 고성 등지에서 왜적의 노략질이 심해졌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일단 퇴각하여 남해 노량에 진을 치고 전라도 수군에 구원을 요청했다.

마침내 왜군이 진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늘과 땅이 딱 들러붙는 듯한 소리였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진주목사 이경은 지리산 상원동으로 숨어들었고, 직속부하인 판관 시민도 수행하였다. 시민도 같이 갔다는 것을 조운은 나중에야 알았다. 하긴 그런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도 조운으로선 무엇을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겠지만. 그것은 상관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서 끝까지 모셔야 하는 시민으로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초유사 김성일이 진주로 달려왔다. 난리가 일어났을 때 백성을 타일러 경계하는 일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이 초유사였다.

김성일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의 형 김극일이 홍원의 임소(任所)에 있을 때 따라간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성안에 불이 나자 모두 관아를 구하러 달려갔지만, 그는 홀로 전패(殿牌)를 받들어 깨끗한 곳으로 옮기어, 그것을 본 이들이 기특해 하였다는.

김성일이 왔다는 전갈을 받고 하산하려는 시민에게 이경이 말했다.

“판관 혼자 가시오.”

어리둥절해 하는 시민에게 이경은 상을 찡그리며,

“나는 등창이 심해 움직일 수가 없소.”

사실 이경의 등에는 큰 부스럼이 나 있어 여간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니었다.

“미안하오, 판관.”

“아닙니다. 그렇게 고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민은 느낌이 썩 좋지 못했다. 때가 때인 만큼 아무리 급박하고 중차대한 일이라도 사적인 사정이 용납되기는 어려울 터였다.

“목사는 왜 아니 왔는가?”

김성일은 시민이 예상한 대로 당연히 그 말부터 꺼냈다.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일본의 침입이 없을 것이라고 고한 바람에 임진전쟁 초기에 파직되기도 했던 그이기에, 그의 현재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를 시민은 모르지 않았다.

“저, 실은 목사께서는 지금 너무나…….”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사육신의 관작을 회복시켜 그들 후손을 채용할 것을 진언하기도 했던 김성일은 얼굴을 붉히며,

“너무나고 저무나고!”

“누구 눈으로 봐도…….”

“내 눈은 못 봤어!”

시민은 이경의 병세가 심각하다고 계속 고했으나 김성일은 끝내 전령(傳令)하여 나오게 하였다. 몰인정한 처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누구든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기도 했다.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한 사람이구먼. 판관도 그래. 지금 나라 정세가 어떠한데…….”

그러나 이경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산에서 실려 오다가 소남촌사에서 등창이 발작하여 죽고 말았던 것이다. 시민은 좀 더 고집을 피우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 아팠다. 후대 사람들은 이경을 비겁한 관리로 치부해버릴 공산이 컸다. 그가 살아 있다면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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