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現象)과 본질(本質)을 외면하는 한국사회
현상(現象)과 본질(本質)을 외면하는 한국사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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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섭(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 외래교수)
우리는 일상의 현상들을 본질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상이란 본질의 극히 한정된 형태를 나타내는 과정으로 현상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심각한 우를 범하게 된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많은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지방선거 등도 그것이다. 지방선거의 주된 목적은 내가 사는 지역에 나를 대신해 살림을 대신 집행하고 운영할 사람, 우리 아이들의 미래교육을 책임질 사람, 그러한 행위를 견제·감시할 사람을 뽑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총선처럼 ‘정권 안정론’, ‘정권 심판론’ 등 정당싸움으로 본질이 전락하고 말았다. 후보들의 공약과 인물검증은 없고 고소·고발전이 판을 치는 고질병만 또 도졌다. 그러니 선거란 것이 최선의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선택만을 피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한다. 과연 최악의 선택을 피했는지도 두고 볼 일이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가 벌써 20년이 됐다.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다. 지방자치 선거와 수준이 여기에 걸맞게 성장했는지 의문이다. 지방선거가 실생활 면에서 보면 국회의원 선거보다 중요한데도 그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유권자들이 우리들의 본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가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의원들이 제출한 관련 법안이 70건을 넘고 있다고 한다. 금번 사고의 원인 중 하나인 여객선 화물 과적 등의 처벌이 원래 해운법에는 처벌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2012년 국회가 신설조항을 넣는 법을 개정하면서 처벌조항도 그에 맞춰 고쳐야 함에도 빼먹어 버려 처벌조항이 없는 황당한 일이 이번에 밝혀졌다. 입법활동의 본질을 망각한 국회의원들을 믿고 또 세월호 국정조사를 맡겨 성과를 기대해도 될지 의문이 앞선다.

얼마 전 전주지법 이형주 판사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판결을 두고 보수 언론 등에서는 무차별적으로 비난을 가했다. 그 내용은 이전에 그가 판결한 도박사이트 개설자에게 솜방망이 처벌 판결과 금번 세월호 참사에서 출항 전 선박에 대한 안전점검 보고서를 허위 작성한 해운조합 관계자들의 구속영장에 대해 “해양 안전은 국가의 격(格)이 올라가야 해결될 일”이라며 영장을 기각했다는 것이다.

그가 판결한 내용을 보면 먼저 “도박장 개설행위는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는 면이 있지만, 국가가 세수확보에만 혈안이 돼 각종 복권, 경마, 경륜, 카지도 등을 개장하는 수많은 사행사업의 거악(巨惡)을 저지르고 있으면서 개인의 도박장 개장행위를 중죄로 단죄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의 영장 기각사유에서도 “온 국민을 슬픔과 분노로 몰아넣은 세월호 사건으로 사고발생에 직·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이들에 대해 합당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대형 해양사고는 해양부문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전·현직 공무원과 관련업계의 유착을 방지하며 위법행위를 엄히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예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 사고만의 처벌이 본질적인 해법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 있는 법치주의의 현주소와 무엇보다도 우선시돼야 할 국민의 안위는 모든 생활·업무영역에서 목적적 가치가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감시 아래 실천됨으로써 국가의 전반적인 격이 올라가지 않는 한 방지될 수 없다고 적었다. 과연 이 판사의 판결이 비난받을 일인지 비난의 그 본질을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는 오랜 기간 쌓여 온 우리 사회의 후진성과 총체적 부실이 압축되어 분출된 것이다. 이것들은 현재의 상황을 즉시 처리해야 할 현상이기는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거시적으로 보면서 정확히 접근하지 않는 한 항구적인 대응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문턱에서 오랜 기간 추춤하고 있는 이유가 경제적 의미의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민의 마음속에서 공익과 보편적 가치 추구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일시적인 현상에 일방적이고 무비판적인 동조로 인한 본질적인 문제의 해법을 간과한 결과는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원섭(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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