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세(勢) 몰이
<이준의 역학이야기>세(勢) 몰이
  • 경남일보
  • 승인 2014.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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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취임을 앞둔 당선자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떠돈다. 이번 과장은 누가 하고 어떤 사업은 누가 맡고 하는 등의 선거운동 시 관여하였던 인물들의 논공행상에 관한 말들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를 전쟁에 비유하여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모든 전리품을 차지한다(Spoils belong to the victor)’는 관행에 따라 선거에서 승리한 당선자가 자기의 정책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자기주변 인물들을 곁에 포진하는 엽관주의(spoils system) 방식을 원론적으로 나무랄 수만은 없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다. ‘전쟁에서는 유능한 장수가 필요하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엔 현명한 재상이 필요하다.’ 장수가 재상직을 수행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전쟁과 평상시라는 시운(時運)의 판세(勢)가 다르니 그 판에 어울리는 적절한 사람을 중용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당선자의 몫이고 향후 당선자의 업적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인부족 세부족(人不足 勢不足)’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모자라니 세력이 약하여 어떤 일이든 추진해 나가기가 어렵다는 말임과 동시에 아무리 옳은 소리이고 또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내편이 없으니 눈뜨고 속수무책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한탄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잘 간파하여 자기사람 자기패거리 만들기에 애를 쓴다. 특히 세력과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야욕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나아가 시민사회라는 미명하에 여론몰이, 패거리 정치, 떼거리 민주주의, 떼 법 등의 냉소적인 소리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른바 민주주의가 중우정치 (衆愚政治·ochlocracy, mob rule)로 전락하는 한 모습이다. 이를 플라톤은 이를 폭민정치(暴民政治)라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빈민정치(貧民政治)라 하였다.

사람들의 이런 떼거리 특성을 잘 간파하여 실제 군사·정치면에서 잘 이용한 사람이 귀곡자(鬼谷子)선생의 제자인 손빈, 방연, 장의, 소진이다. 이들 중 소진(蘇秦)은 약자들이 모여 강자인 진(秦)나라에 대항하여야 한다는 합종책을, 장의(張儀)는 약소국들은 현실을 직시하여 강자인 진나라에 실리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연횡책을 실시하여 개인적인 영달을 취하였다. 이 합종연횡책 이후 사람들은 이를 빌미삼아 인간이면 당연히 추구하여야 할 도덕적 이상을 코웃음으로 내팽개친다.

어떤 양심의 가책이나 거리낌 없이 그저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가볍게 뒤집는 후안무치하고 뻔뻔스러운 풍토가 더더욱 고착되었다. 유불리에 따라 거짓말도 떡 먹듯 하게 되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얄팍한 철새 정치인이 오히려 큰소리 치는 세상이 되었다. 즉 성인(聖人)이 다스리는 황제(皇帝)의 정치에서 세력(勢力)과 이익(利益)따라 촐랑거리는 패자(覇者)의 정치로 전락하였다고 소옹(邵雍, 康節)은 황(皇)·제(帝)·왕(王)·패(覇)론에서 비판한다.

음양오행론 학과 술의 연원을 제각기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개 공통적으로 주역 괘효를 기반으로 하도(河圖)·낙서(洛書)의 수리(數理)를 들먹인다. 그리고 복희 문왕 공자를 꼭 끼워 넣는다. 그러나 주역 어디에도 ‘하도’’나 ‘낙서’라는 말이 없다. 물론 복희 8괘도도 없다.

그럼에도 사주팔자, 풍수지리, 육효점, 기문둔갑, 육임, 자미두수, 오운육기 등등 제반 술수(術數)에서 꼭 이를 인용한다. 음양오행 술수의 근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복희 선천도’는 전설상 당말 화산 도사 진단에서 출발하여 종방(種放) 목수(穆修) 이지재(李之才)를 거쳐 소옹에 전해진 이래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소옹(1011 ~ 1077, 송나라)의 영향이 그만큼 크다. 또 유사한 시기 서거이(徐居易,子平, 오대~송 초기)는 당시 떠돌던 중국 명리학들을 종합·체계화시켜 지금 인용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인터넷을 도배하다시피하고 있는 현란한 역술이론들은 거의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전라도 강진 유배 시에 소옹의 이런 술수론적 기반들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리고 도덕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성품과 관계를 탐구하는 역학체계를 구성한다. 하지만 다산 선생도 ‘진 꽃’에서 스스로를 돌이키며 이렇게 반성한다. ‘그동안 나는 브레이크 없는 수레를 몰았다. 가득 채운 기름통만 믿었다. 어느 순간 내닫던 수레가 엎어지자 기다리고 있던 그물이 순식간에 나를 채갔다.’

당선되었다고 너무 자만하거나 세력에 의지하거나 세력을 과시하고 또 세몰이를 하지 말라. 물론 꽃은 피어 빛날 때 마음껏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영광스러운 광휘(光輝)를 발휘하여야 하지만, 꽃의 영광은 가을의 결실을 위한 것일 수도 있으니, 열매 없는 찬란함은 그저 못 잊을 추억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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