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5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50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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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3. 환각은, 꿈은
“저 연꽃 좀 봐라. 정말 이쁘다.”

정씨는 가마못 속에 피어 있는 연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둘님의 얼굴도 조금 펴졌다. 진흙 속에서도 고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 대궁을 보면 신기할 지경이었다. 못물은 남강처럼 멋지게 굽어 감돌지는 않지만 그냥 고여 있는 것만도 아니었다. 무슨 신비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물방울은 참 재미있는 자연의 구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난리통이었다. 산모와 태아가 한꺼번에 위험할 수도 있었다. 별의별 방정맞은 생각이 다 드는 정씨였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무슨 수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늘을 날 수 있는 신기한 기구라고 하니, 사위가 어서 그것을 완성시켜 임신한 딸을 태워 왜놈들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으면 하는 바람까지도 가져보는 그녀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내가 미쳤구나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입에서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비차 비차 비차다…….”

정씨는 전율했다. 아무리 헤아려 봐도 스스로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녀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자칫 광녀가 조운을 깊이 마음에 두고 있다는 증거로 부각되어 딸 부부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갈 위험까지도 있는 그 ‘미친 노래’(정씨는 광녀가 아무 곳에서나 불러대는 노래라는 선입감에서, 그 노래 또한 미친 수레인 비차처럼 미친 노래라는 고정관념을 떨치지 못했다.)를 내가 부르고 있다니?

대체 왜? 무엇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나? 그러던 정씨는 홀연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참으로 기이하고 믿을 수 없는 현상이 그녀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꼭 진주성에서 비차가 날 수 있을 것 같은, 아니 벌써 날고 있을 것 같은 환각(아니면 꿈)에 젖어들고 있었으니!

‘그 노래를 불러 비차라는 것이 날 수만 있다면…….’

그랬다. 정말이지 그렇게만 된다면, 백번 천번 미친 여자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그 노래를 부를 것이다. 부르다가 지쳐 그대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씨는 가마못이 뒤집히면서 그들 모녀를 덮쳐오는 것 같은 느낌에 휩싸여버렸다. 정확히 말해 정신이 뒤집혔다고나 할까. 그리하여 딸에게도 시키고 싶었다. 너도 얼른 그 노래를 부르라고. 나아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도 부탁하고 싶었다. 그 노래, 미친 그 노래를 불러 달라고.

정씨의 환각은, 꿈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들었다. 온 세상이 부르고 있는 미친 노랫소리를. 진주성에 가보자. 난다 난다 비, 비차. 그리고 보았다. 멀리 남쪽 방향의 진주성 쪽에서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는 미친 수레를. 저 노래! 저 수레!

만약 그때 가끔씩 동네를 지나가는 사내들이 못가 나무 그늘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정씨는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 보자기와 지게에 물건을 잔뜩 싸고 짊어진 보부상들이었다. 정신이 번쩍 돌아온 정씨는 어쩌면 남편 학노와도 함께 다닌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못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그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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