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뼈라도 찾을 수 있으면…”
"그저 뼈라도 찾을 수 있으면…”
  • 곽동민
  • 승인 2014.06.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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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몰군 미망인 강희분 할머니
▲64년전 6.25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강희분 할머니. 남편을 잃은 강할머니는 그 오랜세월을 남편을 그리워하며 살았다.오태인기자
오늘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64주년이 되는 해다. 나라를 지키다 호국의 혼으로 산화한 분들을 기리는 날, 우리 주변에 아직도 전쟁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한번쯤 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 미망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17살에 드무실(진주시 하촌동)에서 이리(진주시 상평동)로 시집을 왔지,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때 안끌려 가려고 일찍 결혼을 했어. 23살에 어른들이 재금(분가)을 내주셔서 몇 년 살다가 둘째가 태중에 있을 때 6·25전쟁에 참전했어. 그 때가 음력 6월 6일(1950년 7월 20일)이야. 아직 날짜도 잊지 않았어.”

올해로 88세인 강희분 할머니. 그는 그렇게 동갑내기 남편 강재호 할아버지를 저세상으로 떠나 보냈다.

“전쟁이 끝나고도 몇 년을 소식도 모르고 지냈어. 그러다 편지 한 통을 받았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같이 있던 동료가 베껴 써서 챙겨온 편지였나봐. ‘백두산 봉우리에 태극기 꽂으면 상봉하자’고…”

“편지를 받고 나니 꼭 살아 있는 것 같더라. 기다리고 기다리다 점집에 많이도 드나 들었지. 모두 다 ‘돌아온다’고 하더라고. 오랜 세월 잠결에도 강나루에 뱃소리가 나면 문밖에 나가 한참을 기다렸어.”

“딸 둘 하고 살아보겠다고 온갖 장사 다 하느라 머리에 이고 다녔더니 머리가 다 벗겨졌어. 머리 아픈 것보다 어린 것들이 아비 얼굴을 모르니 아버지 찾을 때면 마음이 더 그렇더라. 내가 글을 배워 책을 썼으면 내 글 안 읽을 사람 없을 거야. 내 살아온 해로가 그렇다.”

“살림도 몇 년 못살고 헤어졌지만 음력 9월9일에 맞춰 제사 지낼 때는 그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지. 그러다 몇십년전 동작동 국립묘지에 갔다가 겨우 위패를 찾았어. 평생 이사 한번 안하고 한 집에 살며 기다린 덕분인지 주소를 알려주니 대번에 찾아주더라. 직원이 써준 군번카드를 손에 들고 위패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강희분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라는 낡은 목도장을 꺼내 보였다. 오랜 세월 쥐어보고 품어본 목도장은 대리석 마냥 반짝였다.

“이제는 그저 뼈라도 찾을 수 있으면 해. 그러면 나도 더이상 자식들한테 어려움 안 끼치고 조용히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내 남은 바람이야.”

진주지역에는 480여명의 전몰군경 미망인이 생존해 있다. 후원 문의는 전몰군경미망인회 진주시지부 055-753-2485.

정리=곽동민기자·사진=오태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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