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풀고 털고 미래로 갑시다
다 풀고 털고 미래로 갑시다
  • 경남일보
  • 승인 2014.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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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 행정대학원장)
우리나라를 흔히 갈등공화국이라고 한다. 이념, 지역, 세대, 정파 간 갈등이 끝없이 표출되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네편과 내편이 분명하게 갈리고, 반목과 대립은 임기 내내 계속된다. 인사도 논공행상을 따져 내편 챙기기만 한다. 당연히 공을 내세워 이권을 챙기려는 사람, 점령군 행세를 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선거기간 동안에 생긴 앙금은 쉽게 털어내기 힘들다. 승자도 패자도 상대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곳곳에서 불고 있다. 화합과 상생의 바람이다. 정쟁과 갈등을 넘어 화합하고 상생하는 정치로, 내 상처보다는 상대방의 아픔을 먼저 위로하고 보듬고 가는 화해의 정치로 변해가고 있다. 제주도에서, 충청도에서, 경기도에서, 서울시에서 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갈등과 대립으로 지쳐 있는 국민들에게 신선한 바람이다. 선진국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관행이지만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는 협치(governance)를 화두로 내걸고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자신과 경쟁했던 야당 후보를 삼고초려 끝에 도지사직 인수위원장에 기용한 것이다. 대권을 향한 ‘이미지 정치’라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정치문화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자도 통합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야당과의 작은 연정을 추진하고 있다. 선거기간에 약속했던 사회통합 부지사 자리를 만들어 야당에게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고,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정책협상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2년 6개월 전 보궐선거로 서울시에 입성하였을 때 전임 시장의 정무직 공무원을 상당수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번에도 정몽준 후보를 만나 ‘서울시의 고문으로 모시고 핫라인을 만들어 경청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상대 진영의 공약을 도정에 반영할 것임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기득권 포기와 협력의 정치실험이다. 성공여부를 떠나 새로운 시도만으로도 국민들로부터 값진 평가를 받을 것이다.

지난 2005년 도리스 컨스 굿윈은 ‘Team of Rivals’이라는 책을 펴냈다. 링컨의 전기에 관한 내용이다. 직역하면 ‘라이벌들의 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의 조건’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책이름을 이렇게 붙인 이유는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경선 때부터 맞서 싸웠던 라이벌들을 내각에 중용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었던 정적들을 국무장관, 재무장관, 법무장관 같은 요직이 앉힌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것도 그가 보여준 통합의 리더십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라이벌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기용하고,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되도록 길을 터 주었다.

내달 1일이면 민선 6기가 출범한다. 화합과 상생이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은 권력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국민들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특정 정치세력에 매몰되어 있는 정치지도자는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치인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이제 선거기간 동안 쌓인 응어리를 다 풀고, 불편한 감정들을 다 털어내고 미래를 향해 가야 한다. ‘친구를 가까이 하라. 그러나 라이벌을 더 가까이 하라’는 만델라 전 대통령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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