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5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5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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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1. 그의 몸이 비차다
조운이 막 사립문 밖에 나와 섰을 때였다.

별안간 그때까지 멀쩡하던 하늘에서 새가 후루룩 날개 치는 소리를 내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위가 어수선해지면서 대번에 알싸한 흙냄새가 훅 코를 찔렀다. 마침 장난을 치며 지나가던 아이들이 소리 질렀다.

“와아, 호랑이 장가간다아!”

“아니다. 여우가 시집간다아!”

정말 햇빛은 쨍쨍 비치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조운은 어릴 때 동네 노인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옛날 어떤 작은 마을 뒷산에 수컷 호랑이가 살았는데, 보름날 밤이 되면 내려와 젊은 여자들을 납치해가곤 하여, 마을사람들은 그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모시고 보름에 한 번씩 투표로 결정한 처녀 집에 쌀을 많이 주고 처녀를 바치기로 했는데,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한 처녀가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호랑이에게 가겠다고 했고, 그 처녀를 잡아먹으려던 호랑이는 처녀가 아버지를 걱정하여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듣자 평소에는 자기와 함께 살면서 보름에 한 번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마을사람들이 그 처녀를 호랑이가 둔갑한 것이라고 여겨 처녀를 죽여 버리자 화가 치민 호랑이는 처녀 아버지만 남겨두고 모조리 죽이는데, 호랑이를 무서워한 처녀 아버지도 도망치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죽은 처녀는 하늘로 가서 구름이 되고 죽은 아버지는 하늘로 가서 해가 되었으며, 호랑이가 혼례식을 치르는 날 처녀는 호랑이를 보려고 비가 되어 내리고, 해가 된 아버지는 딸을 지키기 위해 비가 내리는 중에도 하늘에 떠 있었다.

‘호랑이가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다면, 같은 짐승인 여우와는 더 쉽게 부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우에게 장가가는 호랑이와, 호랑이에게 시집가는 여우. 우리 사람들도 모두가 그렇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으면.’

아직 처녀 총각 시절이었던 때, 둘이 나란히 초가 처마 밑에 서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였다. 조운은 비에 젖은 둘님의 머릿결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날도 이날 같은 여우비가 내렸었다. 햇살과 빗발이 함께하는. 그의 마음에 둘님은 늘 햇살이었다. 그렇지만 둘님에게 그는 빗발일지도 모른다는 자격지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비차가 완성되기 전에 혼례부터 올려버린 게 여전히 마음에 옹이로 박혀 있는 그였다. 작은 집안을 이끄는 가장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정말 싫었다. 자기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목사 시민은, 평화롭던 시절에는 덕망 있는 목민관으로 고을을 다스리더니, 지금 같은 전시체제에는 수성장으로서 왜군과의 전투에 당당히 대비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민간인들은 이제 곧 피난을 가지 않으면 안 될 텐데. 그런 생각 하나만으로도 조운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미완성의 비차를 내버려두고 떠나야 하다니. 그럴 순 없었다. 차라리 비차의 잔해와 함께 마지막을 맞으리라. 비록 하늘을 날지 못하는 수레지만 나의 분신과도 같은 비차가 아닌가 말이다.

‘아무리 못난 비차라도 나는 미워하고 배신할 수가 없어. 아, 불쌍한 비차. 어쩌다가 나같이 무능한 주인을 만나 한번 날아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사라져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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