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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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4.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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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아 (한의학 박사)
잊을 수 없는 환자들이 있다. 부산에 사는 전 사장이라는 분인데 사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장암, 폐전이로 수술한 후 뼈암으로 전이되어 수술하고 항암치료한 후 다시 재발되어서 수혈과 진통제로 버티고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완치되기를 기대하지 못했다.

처음 부부가 내원했을 때 환자는 천연물질로 암세포가 죽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부인이 하도 가보자고 해서 그냥 한번 와본 것이라고 했다. 2005년 그 당시에는 국산 석룡자를 구할 수 있던 때로 구입가격이 100만원을 넘었다. 다른 약재값도 있었으나 말 못하고 석룡자 원가만 말해주니 오히려 우리를 사기꾼으로 여기고 어차피 죽을 건데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며 치료를 거절했다. 부인은 마지막 소원이니 인산약을 먹어 보자고 환자에게 애원하여 결국 약을 주문했고 돈을 받았으나 사실 부족한 금액이었다.

당시 나도 지치고 있었다. 완치 가능성이 높은 초기 암환자들은 오지 않고 오랜 병원치료로 면역계가 다 소진되어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말기 환자들만 한방치료가 무슨 마술이라도 되는 양 찾아왔다. 나는 나를 위해서라도 환자가 완치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말없이 우리 돈을 보태 약재를 구했다. 그때 두 사람에게 같은 약재를 구해 넣었다. 다른 한 사람은 돈을 다 받았고 전 사장한테는 금액을 다 말 못해서 모자라게 받았다. 다른 사람은 부자였는데 그 귀한 약을 가지고 혼자 강원도 산골에 가서 한두 봉지 먹다가 맛 없다고 냉장고에 버려두었고 실패했다. 그러나 전 사장은 부인 덕분에 약을 꼬박꼬박 계속해서 먹었다. 점점 통증이 사라져 진통제도 끊게 되었고 이듬해 병원에서 성공판정을 받았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올바른 약과 그리고 가족의 도움이다. 부부 중 한쪽이 나머지 한 쪽을 살리고 부모가 자식을 살린다. 치료약이 있더라도 누군가 입안에 넣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2009년도 난소암 재발환자는 3차수술과 항암을 거절하고 남편의 의지와 도움으로 가족여행 갈 때도 버너와 코펠을 가지고 다니면서 탕약을 데워 먹었고 성공했다. 2010년 환자인 강직성 척추염 미국 대학생도 그 어머니가 합성약품을 쓰지 않고 끼니 때마다 탕약을 챙겨 먹여 지극정성으로 치료했다.

나는 이들의 헌신적인 가족애와 끈기에 너무나 감사한다. 나도 지치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례가 없다면 나도 늘 포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한 인간으로서 매일 할 일을 해내며 버텨 나가는 이유는, 내가 소외된 한방 암치료 현장에서 현실을 포기하고 놓아버리지 않는 이유는 내 자존감, 내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 가족에 대한 사랑과 환자들이 보여주는 헌신적인 가족애에서 힘을 얻기 때문이다.

최은아 (한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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