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호밀밭은 자연 위한 투자
무성한 호밀밭은 자연 위한 투자
  • 경남일보
  • 승인 2014.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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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의 귀농일지> 호밀베기
산과 가까운 논밭을 야생동물은 놀이터나 식탁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두면 더 많은 야생동물이 모여들면서 논밭이 분주해진다. 낮 동안에는 주로 새들이 날아와 먹이활동을 하느라 바쁘게 날아다니고 해가 진 저녁이면 크고 작은 야생동물들이 나타나 농작물에 큰 피해를 남기기도 한다.

지난 초겨울에 뿌렸던 호밀이 누렇게 익어 늦기 전에 베어야 했다. 호밀을 심는 것은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토양을 개량하고 다른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축산농가에서는 가축의 먹이로 쓰기 위하여 호밀을 재배하기도 한다.

이런 논밭에서 일을 하다보면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호밀이 다 자라면 논밭은 호밀에 가려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다 자란 호밀을 베다 보니 호밀밭은 야생동물의 놀이터이자 은신처로 변해 있었다. 꿩이 알을 낳아 품고 있는가 하면 고라니도 새끼를 낳아 숨겨두고 키우고 있는 것이었다.

매실묘목에 싹이 트고 내미는 잎을 어떻게 남김없이 뜯어 먹는가 했더니 새끼까지 키우는 고라니의 짓이었다. 호밀밭에 새끼가 숨어 있느니 울타리를 쳐 두어도 부수고 들어갔던 것이다. 잠시 한 눈을 팔고 있었던 사이 풀이 자라 은신처가 만들어지자 몰래 자리를 잡았던 것 같다. 그러니 새순을 뜯어먹어 치우는 고라니를 당할 재간이 없었다.

알을 품고 있는 꿩이 갑자기 날아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포란을 하고 있는 꿩은 사람이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고 끝까지 알을 품고 있다. 때로는 풀을 베기 위하여 이리저리 움직이는 예취기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도 한다. 잡초 속 땅에 둥지를 만들고 숨어 있는 꿩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 일어나는 일이다. 보호색을 띠고 있는 꿩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앞에 두고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호밀을 베면서 고라니 새끼 한 마리를 잡았다. 아직 어린놈이라 키가 큰 풀밭을 헤치고 도망을 치지 못해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등에 무늬가 있는 놈을 손으로 움켜지니 크게 울부짖었다. 어미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끼친 피해를 따진다면 당장 패대기쳐 버리고 싶었지만 빤히 바라보는 눈망울을 보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다음에 돌아와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하지만 울타리 밖 풀숲에 그냥 풀어 주었다.

꿩이 날아간 자리에는 알이 열 개나 남아 있었다. 손을 대어보니 온기가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에는 꿩알을 줍겠다고 풀숲을 헤치고 다니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발견한 행운을 거두지 않았다. 꿩도 씨앗을 파먹고 새싹을 쪼아 피해를 입히기는 고라니와 같지만 시끄러운 기계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로 밀려나기까지 꿈쩍도 하지 않고 알을 지키던 모습 때문이다.

매실수확을 하느라 미루어 왔던 과수원 풀베기를 했다. 기온이 올라가고 소나기까지 내려주자 잡초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풀은 제 때 베지 않으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길게 자란 풀이 예취기에 감기며 작업을 더디게 하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낫이 아닌 엔진이 달린 예취기로 하는 작업이지만 풀베기는 고된 작업이다. 때로는 풀 속에 숨어 보이지 않던 돌이 예치기 날에 맞고 튀어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예취기로 풀을 벨 때는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한낮 햇살이 강할 때 그늘이 없는 곳에서 일하기란 쉽지 않다. 햇볕이 강할 때는 그늘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을 찾아서 한다. 단감을 한차례 솎았지만 다시 둘러보면 빠진 곳이 많아 다시 손을 봐 주어야 했다. 흔히들 끝감이라 부르는 가지 끝에 늦게 감꽃이 피고 열린 열매는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올해는 유난히 끝감이 많이 달려 할 일이 많아졌다. 끝감은 그냥 두어도 제대로 자라지 않을 뿐 아니라 기형과가 많아 상품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감을 솎고 끝감을 제거 하면서 웃자란 도장지를 휘어잡는 작업도 같이 했다. 도장지 휘기도 시간이 지나 새가지가 굳어지면 작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지금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그냥 두면 나무위로 크게 웃자라 쓸모가 없지만 꺾어두면 내년에 골라 쓸 수 있는 가지도 생기고 나무 생장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찬효 시민기자

호밀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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