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6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60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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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2. 신이 보낸 사람
“그보다도 내가 형씨를, 아, 윤에게서 얼핏 들으니 성씨가 강씨라고요. 경상도 진주 사람이라는 것도 알려주었소. 어쨌든 내가 물어물어 강형을 찾아온 것은…….”

정평구는 할 이야기는 많은 것 같았지만 무척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조운은 그에게서 신중하고 다재다능한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이제부터 뭔가 범상치 않은 사건이 벌어질 듯한 예감이 들면서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조운은 작업을 하다가 힘이 들면 잠시 앉아 쉬는 멍석을 가리켰다. 그것은 손재주가 뛰어난 그의 작품으로 모두의 탄복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자리가 편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게 권하면서 저만큼 세워져 있는 비차의 운전석에 눈이 가는 조운이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안전성이 뛰어나도록 설계해 온 그였다. 정평구는 운전석뿐만 아니라 그 옆의 조수석과 뒷좌석까지를 골고루 살피는 눈치더니,

“아니요. 멋진 방석이구려. 보기만 해도 몸이 편안해지는 것 같소.”

조운은 점점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그들은 짚으로 결어 네모지게 만든 큰 깔개에 가서 앉았다. 마주보는 두 사람이 십년지기처럼 정답게 비쳤다. 그것을 본 둘님이 말했다.

“집에 가서 먹을 것 좀 가져올게요. 저분께서 시장하실 것 같아요.”

둘님은 남들 앞에서는 늘 그러듯 지금도 광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까마득 잊은 듯했다. 정평구가 사양했고, 조운은 그러라고 아내에게 눈짓을 했다. 저만큼 가고 있는 둘님의 뒷모습을 미안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정평구가 조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소이다.”

조운은 약점이나 아픈 데를 찔린 사람같이 흠칫 놀라며,

“그, 그렇습니다. 시간이 너무나 촉박한 게 사실입니다.”

오래 전 대나무더미 위에서 뛰다가 대꼬챙이에 찔린 장딴지 상처는 흔적도 없어졌지만 조운은 그 부위가 또다시 욱신거리는 듯했다. 사실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조급해진 데서 비롯된 느낌이리라.

“게다가 진주성에서 전투가 시작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모르고요.”

정평구의 그 말을 듣기만 해도 조운은 숨이 멎는 듯했다. 그렇구나. 정말 전쟁이구나. 오직 비차 제작에만 골몰한 나머지 다른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정평구가 지금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자세를 고쳐 앉는 정평구의 무릎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조운은 놓치지 않았다. 조운은 유일하게 틔어 있는 남쪽 방향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을 타고 북쪽 능선이 펼쳐진 곳으로 굴러가는 화선지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예, 좋습니다. 이건 시간싸움이니까요.”

막 구름을 벗어난 태양 광선이 광녀가 비차 노래를 부르면서 공중으로 날려 올리는 솜털같이 하얗고 부드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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