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6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6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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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3. 일어서는 빛
“내가 이런 난리통에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서 강형을 만나러 온 것은…….”

정평구 입에서는 좁고 컴컴한 동굴 속을 끝없이 헤매다가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사람이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보다도 더 반갑고 기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둘이 힘을 합쳐 비차를 만들어 보자는 뜻에서입니다.”

“예? 그, 그럼……?”

조운의 눈에, 거기 공터에 부서지고 망가진 채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비차의 잔해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켜 다시 원형대로 조립되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어떻소? 이 사람과 같이 일을 해보는 게…….”

정평구는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세차게 두드려 보이며 제안해왔다. 조운은 그 자신도 사내지만 사내 가슴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워 보인 적이 없었다.

“저, 저야 대환영입니다.”

조운은 북받치는 감격과 함께 얼굴 가득 기쁜 빛을 띠어 보였다.

“그러잖아도 혼자서 오랫동안 아무리 머리를 써 봐도 잘 되질 않아서 바짝바짝 애를 태우고 있던 참인데…….”

“나도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오.”

정평구는 솔직했다. 조운이 새로 만들어놓은 비차의 솜뭉치 머리가 그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조운이 언젠가 아버지 술명에게 말했던 것처럼, 날다가 어디에 부딪혔을 때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고안한 장치였다.

“바로 털어놓자면,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런 말이외다.”

하늘에서 이동한 태양이 정평구 얼굴을 비춰주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그늘이 진 것처럼 어둡기만 했다.

“그게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언제부턴가 일종의 우울 증세를 보이고 있는 조운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평구는 메마른 입술을 꾹 깨물며,

“하지만 강형은 충청도까지 가서 비차를 만들 비법을 알고자 한 분이니, 그 열의와 정성이 남다를 터, 우리가 합심하면 기필코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바이오.”

그의 시선이 또다시 가득 쌓아놓은 비차의 재료들로 향했다. 그는 의식적으로 분해된 비차 잔해는 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 실패한 흔적들에서 용기를 잃을까 봐 그러는 것일 게다.

“아니, 이건 확신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성공해야 할 일생일대의 과업이라고 보고 있소.”

“저도 이게 제 운명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하는 것에는 관심도 갖고 있지 않고요.”

조운은 처음 대하는 그였지만 어쩐지 호감이 갔고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정평구가 하는 말이,

“그렇다면 우리는 전생에 쌍둥이형제였던지도 모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조운은 머릿속이 찌르르 하면서 눈앞에 광녀 도원이 나타나 보였다. 혹시 그녀와 나는 전생에 이란성쌍둥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조운이었다. 그러자 광녀 노래가 들려오는 듯했다. 난다 난다 비, 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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