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소통
<이준의 역학이야기> 소통
  • 경남일보
  • 승인 2014.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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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필요해’ 2002년도 자두가 불렀던 노래이고, 한때 개그 콘서트에서 유행했던 코너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인류가 말을 매개체로 그 마음의 상징을 주고받는 한 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식이 항상 문제이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처럼 아무 말이 없어도 마음과 뜻이 전달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천둥소리처럼 시끄럽게 떠들며 말을 하여도 도대체 통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예컨대 코끼리 모습에 관한 장님들의 대화가 있다. 자주 인용하는 예화이다. 여러 장님들이 코끼리 모습을 말하면서 저마다의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띤 주장을 하고 있었다. 코끼리 다리만 만져 본 장님들은 ‘코끼리는 기둥이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배만 만져 본 장님들은 ‘코끼리는 벽이다’라고 내심 확고하게 믿는다. 코만 만져 본 장님들은 ‘코끼리는 나팔과 같다’라며 천둥처럼 고함을 지른다. 모두 코끼리를 손으로 만져 보고 몸으로 직접 체험한 말이기에 저마다의 경험칙에 의하여 자기주장은 백번 천번 옳다. 목에 칼이 들어 와도 이 경험칙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들의 경험은 모두 부분적이다. 옳은 사실(fact)이기는 하지만 전체의 모습일 리가 없다.

만약 이 사람들의 사고와 대화방식이 자기만의 경험적 독선에 빠져 있다면 이들은 영원히 친구나 동지가 될 수 없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저절로 파당이 생기고 갈등과 대립, 미움과 증오, 원한과 복수로 점철되는 관계로 고착된다. 즉 코끼리 다리파, 코끼리 배파, 코끼리 코파…. 이렇게 무리지어 저마다 자기들의 주장만이 옳고 바른 길이고 진리라고 외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모두 이단이며 사악한 무리들이라 단정하여 상대방 타도 및 박멸의 길을 순교자의 심정으로 걷는다. 자기 경험칙에 의한 독선적 만행을 진리라는 이름으로 자행한다.

만약 이 사람들이 열린 마음과 상대방을 수용하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상대방은 친구가 될 수 있고, 전체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정보제공자 내지 협조자가 되며,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 요원이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주장을 무시하지 않고 상대방의 주장을 하나하나 꿰어 맞추면서 코끼리의 참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일부분만 보아왔던 단면들이 조각맞춤되어 전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 기둥 위에 벽이 있고 벽에 코가 달려 있네’ 하는 식으로 서로의 다른 주장을 조합하여 새로운 코끼리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컨대 ‘한 개의 코 위에 벽이 놓였고, 그 위에 네 개의 다리가 있네’ 하는 식으로 엉터리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대화의 수용은 전혀 다른 모습, 다른 세계를 상상하여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요즘 언론에 나타난 대립적 주장들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에 참된 대화 상대방을 수용하는 너그러움이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세 가지 차원의 대화가 있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比劫), 다른 사람과의 대화(印星, 食傷), 세상 권력과 재물과의 대화(官星, 財星)이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는 명상 관찰 사유 사고 추론 등으로 자아를 확인하고 완성하여 나가는 대화이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관계를 건전하게 이루어 바람직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대화이며, 세상과의 대화는 몸이라는 물질이 지탱해 나가기 위한 세속적인 기반으로서의 권력과 재물의 생산과 배분에 관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중 세상 사람들과의 대화양식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인성과 식상이다. 인성과 식상이 고루 갖춰져 있는 사람은 생각과 사유의 폭도 크고 유연하며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듣기 좋고 즐거워하는 몸짓과 소리로써 말도 잘한다.

식상이 없거나 약하고 인성만 있는 사람은 배움도 많고, 본 바도 풍부하며, 생각도 풍요롭지만 표현력이 약하여 다른 이들이 보기에 갑갑하다. 그도 역시 세상 사람이 자기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스스로 갑갑하여 세상을 경멸하고 세상과 등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공부 많이 한 학자, 산속에 틀어박혀 수양하는 스님, 도사 또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견한다.

인성이 없거나 약하고 식상만 있는 사람은 말이 많고 소란스러워도 공허하다.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춤추고, 술 마시며, 수다 떠는 데는 제격이다. 예술가나 달변가들에게서 자주 발견하는 기운이다. 하기에 저마다의 관계에서 적절한 대화방식을 찾아야 한다(印星). 또 침묵도 대화의 일종이니 그 입 다물라(食傷). 그리고 우리 모두 열린 귀를 쫑긋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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