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6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6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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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3. 일어서는 빛
정평구가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그게 아니라, 내가 만든 것과 너무나 똑같아서 하는 말이오.”

조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습니까?”

조운 눈에 미완성의 비차나 비차 재료나 비차 잔해나 모두가 비차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래, 전부 비차야! 아, 비차 비차 비차다!’

그러자 지금까지 저주와 혐오의 대상으로만 비쳤던 비차 잔해가 오히려 정겹고 따스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정평구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도하듯 말했다.

“아무래도 이건 하늘의 뜻이 분명하오.”

둘님의 눈이 구름 걷힌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 그 크고 검은 두 눈에서 광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질시하는 빛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조운의 마음도 창공같이 푸르고 맑아지는 듯했다.

“강형도 한번 생각해 보시오.”

정평구는 갈수록 흥분하고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바람이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불고 있는 걸까. 저쪽으로 굴러갔던 마끈과 화선지와 솜뭉치가 이쪽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정평구 목소리가 능선에 부딪혀 그곳 분지를 왕왕 울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도 없겠거니와, 무엇보다도 우리 두 사람 마음이 판박이처럼 하나인 것이…….”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이렇게 물었다.

“무엇에서 착상을 얻었소이까?”

이번에는 악착같은 면이 엿보였다. 하기야 그런 고집이 없으면 애당초 이런 일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조운이 얼레를 돌리는 시늉을 해보이며,

“연입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날리는 연을 보고…….”

“그건 나하고 같지 않구먼.”

“그럼 어떻게……?”

조운이 물었고, 둘님도 궁금하다는 듯 눈길을 정평구에게로 돌렸다.

“난, 우연히 매잡이가 매를 길들이고 있는 광경을 보고…….”

조운은 그가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매를 부려서 꿩 따위를 사냥하는 매잡이에게서 그런 암시를 얻었다니.

“아, 그랬군요? 매가 나는 모습에서…….”

그런데 둘님은 달랐다. 대번에 입술이 새파래지면서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조운은 정평구가 눈치 챌까 봐 걱정스러웠다. 둘님이 그만 집으로 돌아갔으면 싶었다.

종종 거기 분지 위로 매가 날아들 때도 있었다. 놈이 사냥하는 재주는 실로 놀라웠다. 날아가는 새를 위쪽에서 발로 차서 떨어뜨려 잡는데, 어떨 땐 아래쪽에서 다시 한 번 더 발로 차기도 하였다. 수염 비슷한 검정색 얼룩이 있는 뺨과, 이빨 모양의 돌기가 있어 먹잇감의 척추를 꺾기 좋은 부리는, 사람이 봐도 무섬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 매를 둘님이 특히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광녀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둘님을 해코지할 때는 손톱을 곤두세워 매가 먹잇감을 채가듯이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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