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6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6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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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3. 일어서는 빛
아무것도 모르는 정평구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래 처음에 시작할 때는 매였는데, 만들어 놓고 보니 여기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이 돼 있질 않겠소.”

“아, 비차 모양이…….”

조운은 감탄을 넘어 어쩐지 오싹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역시 신은 존재하고 사람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조운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정말 신기하군요.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이제 둘님의 몸 떨림은 많이 없어졌지만 창백한 낯빛은 그대로였다. 조운은 고을 남쪽 성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곳 성 밖 연지사의 종소리가 들려오기를 바라면서.

“연지사종이 내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마음이 평온해질 수가 없어요.”

둘님이 곧잘 하는 말이었다. 어쩌면 시부모인 술명과 박씨가 들려준 연지사종에 얽힌 내력을 전해 듣고 더 그런 기분에 젖는 그녀인지도 모른다. 박씨가 조운을 잉태하고 있을 때 탁발승으로 시주 받으러 왔던 보묵 스님 이야기도 들었다.

“아무튼 느낌이 괜찮소. 때가 온 것 같아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조운은 그것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머리를 내저었다. 지금 진주성을 지키고 있는 시민이 위기에 빠진 조선을 건질 귀인이라는 사실은 명백해졌는데, 비차를 완성시켜 그 귀인을 구해야 할 조운 자신은 여전히 실패만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일해 봅시다.”

정평구가 조운을 달래듯 했다. 그곳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고 있었다. 거기 공터 위를 날고 있는 새들이 이날따라 유난히 많았다.

‘아, 날고 있구나! 드디어 비차가 날고 있구나!’

조운 눈에 새들이 하나같이 비차처럼 보였다. 분지의 삼면을 빙 에워싸고 있는 능선들도 비차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것같이 비쳤다. 조운은 지난번 광녀와 함께 비차 노래를 불러대던 그때의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을 들으니 한결 용기가 납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정평구도 태양을 올려다보며 환호하듯 했다.

“그렇소. 빛이 보여요, 빛이!”

조운은 어렵잖게 깨달을 수 있었다. 정평구 또한 그동안 얼마나 혼자서 노력하고 힘들어하고 있었는가를. 조운 자신처럼 몇 번이나 죽을 결심을 했을 것이다.

“진작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더라면…….”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아요.”

그들 눈앞에서, 대나무와 소나무와 참나무, 무명천, 화선지, 솜뭉치, 마끈 등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척척 조립되어 금세 거대한 비차 하나가 만들어지더니, 그 손이 비차의 배를 두드리자 비차가 공중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그렇군요. 어쩌면 지금이 더 적당한 시기인 것도 같고요.”

비차의 기본 골격인 대나무가 어서 내 어깨에 무명천 날개를 달아 달라고, 내 다리에 소나무 바퀴를 달아 달라고, 내 머리에 솜뭉치를 달아 달라고, 연방 재촉하는 것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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